스마트폰 진찰, 드론으로 약 받는다…원격진료 시대 성큼[미래on]

비대면 진료, 코로나로 물꼬 트여…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붐
약 배달도 검토…이용자 만성병 재진환자 제한은 산업화 장벽

편집자주 ...기술·사회·산업·문화 전반의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산업·문화 혁신과 사회·인구 구조 변화 등 여러 요인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현상이다. 다가오는 시대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려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가늠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뉴스1은 세상 곳곳에서 감지되는 변화를 살펴보고 어떤 식으로 바뀌는지 '미래on'을 통해 다각도로 살펴본다.

22일 '소아전용' 의료상담센터인 서울 서초구 연세곰돌이소아청소년과의원에서 송종근 대표원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택치료 중인 소아의 보호자와 통화하며 비대면진료를 하고 있다./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음상준 보건의료전문기자 =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사는 60대 남성 A씨는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아야 하지만, 예전처럼 배를 타고 육지 병의원을 방문하는 수고로움이 사라졌다. 처방약도 육지 약국에서 택배로 보내준다.

집에 설치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육지에서 일하는 의사로부터 비대면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어서다. A씨는 "농사일이 바쁜 날에는 육지 병의원을 다녀오는 게 힘들었는데,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지면서 너무 편해졌다"고 웃었다.

30대 초반 대기업 직장인 B씨도 얼마 전 감기에 걸리자 비대면 진료를 받았다. B씨는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병원에 직접 가지 못했지만, 비대면으로 진료와 처방을 받았다"며 "무엇보다 바쁜 직장인들이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진료를 받으려면 무조건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하는 상식이 깨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속도가 붙었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시기에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 재진 환자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감기 등 가벼운 질환에 걸려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할 경우, 완벽한 원격의료 시대가 열리게 된다.

당초 비대면 진료(원격의료)는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의 강력한 반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정책이었다.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면 동네의원이 문을 닫고, 대학병원에만 환자가 몰릴 것이란 우려가 컸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했지만, 의사단체와 야당의 벽을 넘지 못했다.

철옹성 같았던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물꼬를 튼 것은 팬데믹(대유행)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자, 환자가 있는 병원이 가장 위험해졌다.

정부는 한시적이라는 전제조건을 달고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나섰다. 의사단체도 비상사태임을 고려해 비대면 진료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3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고, 다양한 데이터가 쌓였다.

2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2월 24일부터 2023년 1월 31일까지 전국 2만5697개 의료기관에서 총 3661만건(1379만명 진료)의 비대면 진료 수가(의료서비스 대가)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했다. 비대면 진료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향후에도 활용할 의향이 있다'라는 응답이 87.9%로 높았다.

지난 2020년에는 이용자 84만명·참여 의료기관 9397개소·진료건수 142만건·진료비(본인부담금 포함)는 214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2년에는 이용자 1272만명·참여 의료기관 2만2473개소·진료건수 3200만건·진료비는 1조4529억원에 달했다. 이는 비대면 진료의 편의성을 알게 되자 이용자가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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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의료기관 중 27.8%에 해당하는 2만76개소가 비대면 진료에 참여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이 전체 참여 의료기관 중 93.6%인 1만8790개소였다. 동네의원에서도 활발하게 비대면 진료가 이뤄진 것이다.

이 같은 통계를 토대로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는 지난달 9일 열린 '제2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하는 원칙에 합의했다. 비대면 진료를 보조적으로 활용하고 재진 환자와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추진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비대면 진료 전담 의료기관은 금지하기로 했다.

10년 넘게 표류하던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의 첫 관문을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환자 편의성 제고와 함께 산업화 성격을 가진 비대면 진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진 환자 중심의 비대면 진료로는 관련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는 원격의료 업체들이 생존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원격의료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애플리케이션(앱) 이용 환자 대부분은 20~30대 워킹맘·직장인이다. 해당 질환도 감기와 두드러기 등 경증이 많다.

그러나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고혈압·당뇨 등 만성환자가 재진일 때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복지부는 같은 질병으로 같은 병·의원 의사를 90일 이내 방문한 재진 환자에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 법안대로라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환자는 40대 이상 중장년층 만성질환자로 국한될 전망이다. 원격의료 업계의 핵심 이용층을 완전히 배제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선진국에 비해 국내 비대면 진료가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국가는 모바일을 이용해 비대면 진료가 이뤄지고, 드론을 이용해 환자에게 약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 회사도 성황 중이다. 해당 드론에는 카메라 등이 탑재돼 환자가 직접 의사와 대화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원격의료 분야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도 등장하고 있다. 향후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비대면 진료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관계자는 "정부 방안대로라면 비대면 진료 분야의 기업 10곳 중 8곳이 도산할 수밖에 없다"며 "시대를 역행하는 규제"라고 우려했다. 이어 "모든 국민이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이용해야 의료기관과 관련 업체들이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다"며 "비대면 진료로 진단하기 어려운 질환만 금지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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