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한강 소설 속, 가슴 한구석 아려오는 광주·제주여행

'소년의 온다' 속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흔적 주목
'작별하지 않는다'의 제주 4·3 사건 장소도 재조명

제주 4·3 사건 흔적이 남아 있는 섯알오름ⓒ News1 윤슬빈 기자

(서울=뉴스1)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한강 작가가 2024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소설들이 서점가의 베스트 셀러를 도배한 가운데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지마저 관심이 뜨겁다.

이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와 함께 평단에 극찬을 받은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실제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룬 만큼 그 배경지가 더욱 주목받는다.

두 작품은 각각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배경을 두고 있다.

외부전망계단에서 본 옛 전남도청앞 광장(한국관광공사 제공)
전일빌딩245 외곽 탄흔(한국관광공사 제공)

전 세계가 주목하는 5·18의 흔적들

그 차갑든 살...암것도 속에 없는 허재비 같은 손을 맞잡고, 허재비 같은 등을 서로 문지름스로 얼굴을 들여다봤다이. 얼굴 속에도 암것도 없고, 눈 속에도 암것도 없는 우리들이 내일 보자는 인사를 했다이.(소년이 온다, 188쪽)

2014년 2014년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학생 시민군 동호를 주인공으로 계엄군의 발포로 숨진 동호 친구와 끝내 목숨을 잃은 동호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광주의 아픔을 인간의 잔혹함과 위대함을 통해 절박하게 알리며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전세계 20여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세계를 사로잡는다.

19800518 헬기사격 관련 영상과 전시 작품들(한국관광공사 제공)

광주에 가면 '소년이 온다' 속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5·18민주화운동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전일빌딩245. 헬기에서 사격한 총탄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장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진행한 현장 조사에서 모두 245개의 탄환이 확인됐고 이는 헬리콥터 등 비행체에서 발사되었을 것으로 결론 내렸다.

국과수 결론 이후, 이곳을 처참했던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5.18자유공원(한국관광공사 제공)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내부(한국관광공사 제공)

광주 상무지구 아파트 단지 내엔 이곳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상무대 법정, 영창 등을 복원한 '5·18 자유공원'이 자리해 있다.

쉽게 말해 고문 및 조사, 재판 등을 위해 사용된 곳으로 공원 내부에는 헌병대 중대 내무반, 헌병대 식당, 헌병대 본부 사무실 등이 그대로 복원돼 있다.

복원된 건축물 중 가장 큰 규모의 헌병대 본부 사무실에선 수사관들이 잡혀 온 시민들에게 매일같이 자술서와 진술서를 쓰게 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틀리면 구타를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5·18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 금남로에 자리한 '5·18운동 기록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 높이 건물에 민주화운동 확산 지도, 연구기록물, 해외 기록물 등 당시의 역사가 생생히 담긴 기록물을 전시하고 있다.

2011년 5·18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이후 여러 사람의 노력을 통해 2015년 5월13일 개관한다.

이밖에 5·18 민주화 운동으로 세상을 달리하시거나 또는 행방불명되신 분을 모신 '국립 5·18 민주묘지', 많은 사진과 영상에 등장하는 원형 분수대를 볼 수 있는 '5·18민주광장'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송악산을 오르는 길에 바라본 산방산ⓒ News1 윤슬빈 기자

아름다운 제주 속 처연한 흔적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작별하지 않는다, 134쪽)

한강 작가가 2022년에 세상 밖에 내놓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 경하가 제주도에서 만난 인선의 가족사와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4.3 사건은 인선의 부모님이 직접적인 피해자였으며 인선은 어머니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그 참혹한 역사의 빈자리들을 채워나간다. 소설 속엔 제주도의 눈 덮인 풍경 속에서 경하가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자신이 교차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송악산 해안 둘레길ⓒ News1 윤슬빈 기자

4.3 사건 당시, 당시 제주도는 제주 4·3 평화공원 내 전시장에 있는 문구 그대로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 터'였다. 그 가운데서도 학살의 중심지는 서귀포 대정읍에 있는 '송악산' 주변이다.

아픈 역사를 알고 보아도 송악산의 풍경은 장관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이중분화구를 보유한 산이자, 깎아지르는 듯한 해안 절벽은 그림이 따로 없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방목해 놓은 말들도 만나게 된다.

학살된 이들을 추모한 추모비 앞엔 검정 고무신이 놓여 있다ⓒ News1 윤슬빈 기자

4·3 사건의 참상을 가장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섯알오름'이다.

1950년 6월26일 전쟁 발발 후 내무부 치안국에서 예비검속 법을 적용해 농민, 교육자, 공무원, 학생 등 344명을 구속 후 무고한 252명이 이곳에서 학살한다.

두 개의 큰 웅덩이가 눈에 띄는데, 일제가 만든 폭탄 창고에서 일어난 폭발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해방 후 이곳에서 무자비한 학살이 행해지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학살된 이들의 시신은 6년 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혹시나 또 다른 피해를 보게 될지 몰라 먼발치서 바라보기만 했다.

1956년이 되어서야 겨우 149명의 시신을 수습하게 된다. 그중 17위는 신원이 파악돼 유족에게 인도됐지만, 신원 불명의 132명은 '백조일손묘역'에 함께 안장했다.

행방불명된 41명은 2000년까지 증언자의 의견을 토대로 주변까지 수색하며 유해발굴에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seulb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