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네" 선친의 깜짝 덕담…아들딸과 지켜본 최태원 '울컥'(종합)
한국고등교육재단 창립 50주년…설립자 최종현 선대회장, AI로 되살려 등장
재단 장학생 5000명 지원, 박사 952명 배출…최태원 "미래엔 사회문제 풀 능력 있어야 인재"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나무를 키우듯 인재를 키워야 한다. 제가 참 많이 했던 말입니다."
한국고등교육재단 창립 50주년을 맞은 26일, 서울 워커힐 호텔 내부 디지털 사이니지에 한 노인이 등장했다. '십년수목 백년수인'(十年樹木 百年樹人·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심는다)을 일생의 신념으로 삼고 재단을 일군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타계 26년 만에 인공지능(AI) 기술로 구현된 순간이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1974년 최 선대회장이 사재 5540만 원을 털어 설립했다. 반세기 동안 5128명의 장학생을 지원하고, 952명의 박사 학위자를 배출했다. 재단 1호 유학생은 민주주의를 연구한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다. 한국인 최초 미국 하버드대 종신교수가 된 박홍근 교수부터,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 현직 장관급도 재단의 도움을 받았다.
최 선대회장은 장학생들이 유학을 떠날 때마다 출국 전날 꼬리곰탕을 대접한 뒤 "마음에 씨앗을 심어라, 큰 나무로 성장할 때까지 재단은 기다리겠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AI로 목소리와 표정까지 구현된 그가 당시를 회고하는 대목에선 좌중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최 선대회장이 자신의 흉상을 들여다보곤 "안 닮았어"라고 핀잔을 주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제2대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이날 행사에 참석해 선친의 AI 영상을 지켜봤다. 최 회장이 앉은 테이블에는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 장남인 최인근 SK E&S 매니저도 나란히 앉았다. SK그룹 세 오너 일가가 공개 석상에 참석한 모습이 포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태원 회장은 행사 막바지에 기자들을 만나 "아버지가 무엇을 했고, 할아버지(최 선대회장)가 무엇을 했는지 (두 자녀가) 보고 배워야 한다. 그래서 다 참석하라고 했다"며 "미래세대는 본인들이 맡아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선친이 AI로 구현된 모습을 본 소감에 대해서는 "눈물이 찔끔 났는데, 아버지가 하실 수 없는 말씀도 있었다"고 웃었다.
'AI 최종현'이 한국고등교육재단의 50년을 회고하면서 "50년 전 내가 꿈꿨던 이상으로 우리 재단을 성장시켜 준 최태원 이사장, 고맙습니다"라고 한 대목을 언급한 것이다. 최 회장은 AI 영상이 끝난 뒤 이어진 축사에서 "(부친은) '최 회장, 수고했네' 이런 말을 절대로 하지 않으신다. '이거밖에 못 하냐, 더 잘해라'라고 말하셨을 것 같다"고 했다.
최태원 회장은 AI시대를 맞은 미래에는 '문제 해결 능력'과 '사회적 가치'가 새로운 인재의 요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좋은 학교를 나온 고학력자가 리더가 됐지만, 새로운 격변기를 맞은 현재에는 당면 과제를 직시하고 해법을 제시하며 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상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이날 기념식에 앞서 진행된 토론 세션에서 "미래에는 사회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더 필요하다"며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뭔지 정의하고 리소스(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해서 다시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론을 찾아내는 디자인 능력, 이걸 갖춘 사람이 현대의 인재"라고 말했다. 이어 "가치관을 갖고 (타인과) 협동할 수 있어야만 사회 지성(Intellectual)을 이룰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기업에서도 '융합형 인재'를 적극 키우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최근 기업 인사 평가시스템을 언급하며 "옛날에는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가 중요했지만, 오늘날 AI 시대에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이어 "대학을 어디 나오고, 전공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미래의 CEO(최고경영자)라면 융합형 인재가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새로운 인재 육성 프로그램인 '인재림'에 대해선 "과거엔 무조건 최고의 성적을 요구했지만, 미래에는 (장학생에게) 커스터마이즈(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하려고 한다"며 "인재가 진로를 셀프 디자인하면, 재단이 이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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