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예외' 제동 걸린 K칩스법…"이러면 특별법 왜 만드나"

국힘 핵심 조항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에…민주 "삭제 의견"
보조금 지급도 위태 '누더기 우려'…업계 "속도전 또 밀리나"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을 접수하고 있다. 2024.11.11/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김재현 기자 = 여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반도체특별법이 '무늬만 특별법'이 될 위기에 놓였다. 핵심으로 꼽히는 '주 52시간 예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이 야당 반대에 부딪히면서다. 반도체 패권 다툼이 국가대항전으로 확전된 가운데 정치권의 지원이 미비한 한국이 기술 속도전에서 점점 더 밀리는 것 아니냐는 업계 우려가 나온다.

27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여야가 각각 발의한 반도체특별법 심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담은 주 52시간 예외조항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삭제 의견을 내면서다.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반도체특별법을 처리하겠다는 계획도 무산됐다.

민주당은 노동시장에 불필요한 근로시간 유연화 확산 신호를 줄 수 있고,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권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기업들이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를 받아 최대 64시간 일할 수 있게 하는 특별연장근로 제도가 이미 있다는 점도 거론한다. 특별조항으로 근로기준법이 무력화할 수도 있는 만큼 근로기준법 논의 필요성도 역설하고 있다.

주 52시간 예외조항은 국민의힘표 반도체특별법의 핵심이다. 미국의 고소득 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 면제를 담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의 한국판으로도 불린다.

노사 합의를 전제로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을 주 52시간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골자다. 업종이나 직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주 52시간 제도가 오히려 반도체 R&D 속도를 더디게 하고 있다는 업계 목소리도 반영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은 합리적인 대안에도 반도체특별법 핵심 중의 핵심인 소위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을 반대하고 있다"며 "주 52시간제란 허울에 갇혀 반도체특별법 아니라 반도체보통법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누더기 법안 가능성도 점쳐진다. 또다른 핵심 조항인 '보조급 직접 지급'도 야당의 우려로 흔들리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보조금을 명문화하는 것에 대한 정부 측 우려가 있고, 세계무역기구(WTO)가 공정무역 방해를 이유로 회원국의 보조금 직접 지급을 제한하는 만큼 제소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반대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들이 이미 보조금을 직접 지급하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K-반도체의 미래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AI(인공지능) 반도체 호황을 등에 업은 미국 엔비디아와 대만 TSMC 등이 승승장구하며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범용 D램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중국 기업과 반도체 부활을 목표로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일본 기업도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온전한 반도체특별법 통과를 희망하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화이트 이그젬션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경영계는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저하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도 "우리나라도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게 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기업들은 총(시간)과 칼(돈)도 없이 맨몸으로 반도체 전쟁에 뛰어든 꼴"이라며 "충분한 무기를 갖춘 경쟁국들은 점점 기세를 올리며 전진하고 있는데 정치권에 보급로가 막힌 우리나라는 속수무책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고 한탄했다.

kjh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