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보다 더 추운 트럼프가 왔다"…월동준비 나선 K-배터리
배터리 3사 공장 가동률 전년比 급감…"전기차 캐즘에 라인 멈췄다"
IRA 보조금 손대는 트럼프…K-배터리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헤지"
- 최동현 기자
"더 추운 겨울이 올 수 있다."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트럼프 리스크'에 직면한 국내 배터리 업계가 숨죽이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 여파로 실적이 급전직하한 마당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북미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추진하면서다. K-배터리의 이익을 지탱하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까지 줄어들면 대대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의 올 3분기 배터리 공장 평균 가동률이 일제히 급감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59.8%로 전년 동기(72.9%)보다 13.1%포인트(p) 줄었고, 삼성SDI(006405)는 전년 동기(77%)보다 11%p 감소한 68%다. SK온은 46.2%로 전년 동기(94.9%)에 비해 반토막 났다.
전방산업인 전기차 성장세가 둔화했고, 글로벌 완성차업체(OEM)들이 재고 조정에 나서면서 배터리 주문량도 감소한 탓이다. 일부 배터리 업체는 당초 계약분보다 미달한 출하량의 일부를 보전받긴 했지만, 가동률이 낮아진 만큼 장기적인 수익성에는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업계가 더 주목하는 건 '트럼프의 귀환'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녹색 사기'(New green scam)라고 혹평하며 IRA 폐지를 공언해 왔는데, 실제 그의 정권인수팀이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매할 때 받는 7500달러 보조금 폐지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위기감이 커졌다.
관건은 트럼프 당선인이 AMPC까지 축소하느냐다. AMPC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자에 지급되는 보조금으로, 국내 배터리사 수익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K-배터리 3사의 올 1~3분기 AMPC 누계액은 총 1조 3787억 원(LG에너지솔루션 1조 1027억·삼성SDI 649억·SK온 2111억 원)이다. 그중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AMPC가 없으면 영업적자다.
업계는 트럼프 2기 정부가 AMPC까지는 손을 대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다. AMPC 보조금이 줄거나 사라지면 국내 배터리사들은 투자 축소 또는 철수할 가능성이 큰데, 대다수 국내 배터리사의 북미 공장이 미국 공화당 우세지역에 몰려 있어 정치역학상 AMPC 조정이 쉽지 않다는 계산에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더 강력한 반(反)중국 정책을 고수하는 점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국내 완성차·배터리 업계가 60조 원 넘는 투자를 쏟으며 북미에 진출한 이유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對中) 견제 정책 덕이 컸다. K-배터리가 북미에서 철수할 경우 가뜩이나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중국의 영토 확장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된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은 미 대선 직전이었던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전기차·배터리) 생산자들에 대한 보조금(AMPC)은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석희 SK온 사장도 지난 13일 AMPC 축소 가능성에 대해 "너무 지나친 가정의 가정"이라며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업계는 트럼프 2기의 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동시에,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헤징 전략을 펴고 있다. 이미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사업 의존도를 낮추는 'Non-EV' 방침을 공식화했고, 삼성SDI도 '삼성 배터리 박스'(SBB) 1.5를 앞세워 ESS 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SK온도 ESS와 리튬인산철(LFP) 사업 본격화를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북미가 가장 중요한 시장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트럼프 2기의 새로운 룰 세팅은 국내 업계에 크든 작든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며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함께 인도·동남아 사업 확대 등 기존 전략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dongchoi89@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