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보조금 못받은 인텔…美 반도체도 불안하다[트럼프 시대]

'칩스법' 85억달러 보조금 지연…트럼프 "칩스법 나쁜 거래"
새정부서 보조금 줄이거나 추가조건 가능성…AMD 등 경쟁사와 합병설도

인텔 ⓒ AFP=뉴스1

(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 미국의 반도체 기업 인텔이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에 따른 85억 달러(약 11조 4000억 원)의 연방정부 보조금을 아직 받지 못한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AMD와 인텔의 합병을 검토한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등 위기론이 꺼지지 않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칩스법에 부정적이어서 인텔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7일 미국 매체 세마포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는 인텔에 대한 보조금 외 추가 지원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AMD, 마벨 등 경쟁사와 인텔의 합병 등 시나리오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매체는 칩스법 자금 집행을 담당하는 상무부의 고위 관리들이 칩스법 입안을 주도한 마크 워너 상원의원(민주당·버지니아)을 만나 인텔에 대한 추가 지원 필요성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칩스법은 미국 내 반도체 연구와 제조를 촉진하기 위해 2800억 달러를 투자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미국에 반도체 시설을 지은 업체들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한다. 보조금을 받은 회사는 10년간 중국 등 국가에 대한 반도체 시설 투자가 제한된다.

인텔은 지난 3월 미국 상무부와 예비거래각서를 체결하고 미국 내 1000억 달러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85억 달러의 보조금, 110억 달러 규모의 저리 대출, 세액 공제 등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인텔은 지금까지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 인텔의 경쟁력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연방 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텔은 2021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지만,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수조 원의 적자가 누적됐다. 주력인 서버/PC 중앙처리장치(CPU)에서는 제품 경쟁력 저하로 AMD에 추격을 허용했고, 인공지능(AI) 가속기 개발에서도 엔비디아에 뒤처졌다.

그 결과 올해 2분기 순손실 16억1000만 달러(약 2조 2000억 원)를 기록하면서 전체 직원의 15% 감원과 파운드리 부문의 분사 등을 담은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3분기에는 역대 최대인 166억 달러(약 22조8000억 원)의 순손실을 냈다.

또 보조금을 받기 위해 애리조나, 오리건, 오하이오 등 미국 내 신규 반도체 생산 시설은 계획대로 건설하지만, 폴란드와 독일 등에서 진행 중인 공장 건설은 일시 중지하기로 했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보조금 지급 지연과 관련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칩스법에 부정적인 점도 불안요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팟캐스트에 출연해 "칩스법과 관련한 거래는 너무 나쁘다"며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매겨 반도체 기업이 제 발로 들어와 공장을 짓게 하겠다"고 말했다.

TSMC,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타국 기업을 겨냥한 발언이지만, 정작 칩스법으로 가장 많은 수혜를 입는 기업은 인텔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법을 무효로 하지 않더라도 보조금 지급을 지연하거나 추가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릭 스콧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지난 8월 인텔의 인력 감축 계획에 대해 "수십억 달러의 미국 납세자 자금이 투입되는데도 불구하고, 왜 해고가 필요한 것인지 설명해달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다만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당선인이 TSMC 등 반도체 기업들에 대해 관세 인상 등 불리한 정책을 실행한다면, 인텔로서는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jup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