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미국식 상법 개정, M&A 관련 주주소송 남발 초래"
이사에게 주주이익 보호 책임 부여하는 상법 개정 추진
"미국식 이사 신인의무 법리, 우리 법 체계와 안 맞아"
- 박주평 기자
(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 미국처럼 이사에게 주주 이익 보호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상법을 개정하면 인수합병(M&A) 등과 관련한 주주대표소송이 남발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4일 펴낸 '미국 M&A 주주대표소송과 이사충실의무' 보고서에서 "상법에 강행규정으로 주주와 이사 간 직접적인 책임 관계가 생기면 M&A나 기업 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주주들이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일부 판례에서 회사 매각이나 M&A 시 주주에 대한 이사의 신인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회사가 M&A 계획을 발표하면 이사가 신인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주대표소송이 빈번하다. 신인의무는 이사가 자신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충돌할 때 회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충실의무 등을 의미한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미국 상장회사 M&A 거래(1억 달러 이상) 1928건을 분석한 결과 매년 거래 건의 3분의 2 이상이 주주대표소송을 당했다. 기업들은 인수합병 거래 1건당 평균 3~5건의 소송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주주가 공시 정보 부족이나 중요 사항 누락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면 회사와 원고는 '단순 추가공시'나 '합병 대가 상향 조정' 정도로 화해하거나 소를 취하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때 회사는 M&A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원고 측 변호사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제공하고 이것이 일종의 M&A 거래세가 되고 있다.
다만 미국은 M&A 관련 주주대표소송이 빈발해도 '경영 판단원칙'을 통해 이사의 책임을 제한 또는 면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소송 남발'은 막기 어렵다.
한국 상법에도 이사 책임 면제 조항이 있지만, 주주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 하므로 주주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상장회사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이사의 경영 판단에 대한 형법상의 배임죄 적용도 기업인들에게 부담이 된다.
한경협은 이런 상황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면 이사에 대한 주주대표소송뿐만 아니라 배임죄 고발도 빈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민법상의 위임 계약에 근거해 이사의 책임 범위를 설정한 우리 상법에 미국식 이사 신인의무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며 "주주에게 별다른 이익도 없고 기업들은 소송에 시달려 기업 가치 하락의 우려가 큰 만큼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했다.
jup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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