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中후판 반덤핑조사에…철강사-조선사 가격협상 장기화
정부, 반덤핑조사 개시…3개월 예비조사 후 잠정 결정
불황에 실적 개선 노리는 철강 vs 슈퍼사이클에 수익성 높이려는 조선 '대치'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가 시작되면서 국내 철강-조선업계의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조선용 후판은 국내 연간 후판 수요의 60%를 차지해 불황에 시달리는 철강사로선 놓칠 수 없는 매출원이다. 조선업계도 16년 만에 돌아온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아 실적 개선을 벼르고 있어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고됐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지난 4일 관보 공고를 통해 중국산 탄소강 및 합금강 열간압연 후판 제품에 대한 반덤핑(AD)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중국 사강·시노 등 5곳이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는 각각 3개월씩 총 6개월이 소요되며, 중국의 후판 덤핑 행위가 있었다고 최종 판정되면 '반덤핑 관세'가 부과된다.
철강업계에선 예비조사 종료 후 관세를 매기는 예비판정 등 제반 절차를 고려해 최대 1년 이내에 반덤핑 관세 부과 여부에 대한 정부의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예비조사와 본조사 기간을 각각 2개월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어서다. 반덤핑 관세는 정상 가격과 덤핑 가격의 차액 범위 내에서 결정된다.
논란이 된 후판은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으로 조선용과 건설용 등 산업 전반에 사용된다. 반덤핑 제소를 한 현대제철(004020)을 비롯해 국내 철강사들은 매출의 약 15%를 후판 판매로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과잉 생산된 후판을 저가에 해외로 '밀어내기'를 하는 실정이라 업계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중국산 후판 유통가격은 국산보다 톤당 10~15% 저렴하다.
한국무역협회의 지난 7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의 철강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1% 증가했으며 수출 단가는 19.4% 하락했다. 한국철강협회 통계로는 올 1~9월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88만7000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1만9000톤)보다 8.3% 늘었다.
조선업계도 철강업계만큼 중국산 후판 반덤핑 조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건설용과 달리 조선용 후판은 매년 상·하반기마다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정부의 판단에 따라 협상의 주도권이 한 쪽에 기울 수 있어서다. 특히 예비조사 후 관세 규모가 잠정 결정될 전망이라 가격 협상이 평소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
조선용 후판은 철강사의 후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조선사 입장에서도 후판 값이 선박 건조 비용의 20~30%에 달해 민감한 품목이다. 업황 악화로 수익성 개선이 급한 철강업계와, 원가 부담을 낮추려는 조선업계의 신경전으로 올 상반기 가격 협상도 7월 말에야 끝났을 정도다.
물론 반덤핑 관세가 당장 모든 조선사에 적용되진 않는다. HD한국조선해양(009540) 산하 조선소들은 보세구역을 이용하기 때문에 관세를 물지 않는다. 하지만 한화오션(042660)·삼성중공업(010140)과 중소형 조선사들은 '수입신고' 방식으로 원자재를 조달하기 때문에 반덤핑 관세가 부과되면 곧장 영향을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반덤핑 관세가 부과돼 조선용 후판 가격이 조정되면 보세구역을 사용하는 일부 조선사도 (가격 인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경기 부양책이 먹히느냐가 관건"이라며 "내수 부양으로 (중국) 원자재 가격이 높아지면 협상 테이블에서 국내 철강사의 입김이 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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