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월스트리트의 두 동상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뉴욕증권거래소 건물 맞은편에는 보도에서 살짝 내려온 차도에 양팔을 허리춤에 올리고 거래소 빌딩을 당차게 올려다 보는 1미터 30센티 키의 청동 소녀상이 하나 서 있다. ‘겁 없는 소녀상’(Fearless Girl)이다.

주로 여성들이 소녀상 옆에 나란히 서서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2017년에 등장했는데 1989년 브로드웨이에 설치되어서 월스트리트의 상징이 된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 못지않게 유명해졌다.

소녀상은 특별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냥 어린 소녀가 “나도 나중에 커서 그 빌딩 안에서 돈을 많이 벌거야. 두고봐!”하는 분위기다.

여성 조각가 크리스텐 비스발의 작품인데 작가는 이 청동 조각상이 걸파워를 고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원래는 돌진하는 황소를 쳐다보는 모습으로 볼링그린 북단에 있었다. 황소 조각가가 항의해서 지금의 장소로 이동했다.

비스발에게 소녀상 제작을 의뢰한 곳은 SSGA라는 대형 자산관리 회사다. 인덱스펀드 광고용이었다. 그 펀드는 여성 임원 비중이 높은 회사 주식을 많이 편입시킨 펀드였다. 소녀상 발치에 설치된 동판에는 “여성 리더의 능력을 알지어다. 그네들(SHE)이 크게 실적을 낼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SHE는 SSGA가 지원하는 양성평등 인덱스 펀드의 티커 심볼이기도 하다.

소녀상은 미국 안팎에서 인기가 폭발했다. 독일, 노르웨이,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소녀상이 설치되었는데 SSGA가 저작권 침해로 제소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할리우드와 런던증권거래소 부근에도 소녀상이 등장했다. 작가와 SSGA간에도 소송이 벌어졌고 2024년 4월에 합의로 끝났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논란을 별론으로 하면 SSGA는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소녀상이 설치된 해에 SSAG는 약 740만 달러 가치의 광고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작가도 세계 각국에서 상을 받았다.

누구나 다 소녀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황소상 조각가 아르투로 디 모디카가 불편했다. 상업적 목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인식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사실 가만히 있는 작가에게 의문의 1패를 안겼다. 황소상은 번영과 에너지를 상징하는 것인데 SSGA가 금전적 동기를 끌어들여 빌런화 해버렸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멋대로 황소상 맞은 편에 설치했다. 그래서 작가는 최소한 다른 위치로 옮겨줄 것을 요구했다.

여성계의 반응도 긍정 일색은 아니었다. 한 뉴욕타임스 칼럼은 온갖 탈법과 비리가 판치는 기업의 세계에 여성도 잘 적응해서 최상층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잘못된 격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걱정했고 워싱턴포스트 칼럼은 능력있고 자격 있는 여성 인재를 귀여운 여자 아이와 결부시켜 여성상을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특정 여성상의 강요라는 비판도 있다.

소녀상은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 맞춰서 제작, 전시되었다. 즉, 일시적인 용도로 등장했다. 그런데 여성 정치인들의 주도로 영구 설치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수천 명이 참여했다. 일단 1년간 설치로 정해졌다. 허가 기간이 만료되면서 뉴욕시장이 지금의 자리로 이동시켰다.

소녀상은 계속 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는 뉴욕교통국 소관인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허가 만료 상태에서 무허가로 서 있다고 한다. 거래소 앞길은 통상 차량이 통행하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지만 어쨌든 도로에 위법하게 서 있는 셈이고 비상 차량은 언제든 지나가야 하니 안전에도 문제다. 동상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bsta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