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로봇개·드론 뛰노는 SK 울산공장…지역 스타트업과는 'AI 공생'

SK에너지, 스타트업 '딥아이'와 AI 비파괴 솔루션 개발…정확도 98%, 비용·시간↓
中企·스타트업과 '스마트플랜트 2.0' 박차…AI·DX에 '동반성장' 더했다

김기수 딥아이 대표가 'AI 비파괴검사(IRIS) 자동 평가 설루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설루션은 SK이노베이션과 지역 AI기업 딥아이(DEEP AI)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SK이노베이션 제공)

(울산=뉴스1) 최동현 기자 = 높이 2m, 길이 6m의 거대한 원통형 열교환기. 빨갛게 녹슨 이 기계장치 전면에 100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 수백개가 촘촘히 뚫려 있다. 작업자가 내시경처럼 생긴 프로브를 구멍 속으로 밀어 넣자, 노트북 화면에 파장이 그려지더니 몇 초 뒤 빨간색 점들이 표시된다. 직경 1㎜ 크기로 미세하지만, 방치했다간 자칫 대형 폭발 사고를 초래할 수도 있다.

<뉴스1>이 지난 24일 찾은 울산 남구 SK 울산콤플렉스(CLX) 정유 공장에선 SK에너지가 지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아이(DEEP AI)와 협업해 개발한 'AI 비파괴검사(IRIS) 자동 평가 설루션' 작업이 한창이었다. 초음파를 이용해 구멍 속 튜브(관)의 미세 결함을 찾는 작업인데, AI 설루션을 적용해 개발한 것은 SK가 세계 첫 사례다.

열교환기는 정유·석유화학 공정에서 제품을 생산할 때 원유 온도를 조절하는 핵심설비다. 대형버스보다 큰 것부터 주먹만큼 작은 것까지 다양하고, 설비당 튜브 개수도 적게는 30개부터 많게는 7000~8000개에 이른다. 이런 열교환기는 울산CLX에만 7000기, 울산 석화산업단지에는 3만여 기가 깔려 있어 '공장의 모세혈관'으로 불린다.

열교환기가 고장 나면 생산 공정이 멈추기 때문에 상시 점검 대상이다. 하지만 설비 개체가 워낙 많고, 고장 원인의 80% 이상이 겨우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작은 구멍 속에서 생기기 때문에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특히 열교환기 검사를 담당할 고급 인력이 해마다 줄어 점검·수리 기간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였다.

SK에너지가 딥아이와 손잡은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딥아이의 AI 설루션은 기존 전문 인력보다 검사 시간을 90% 단축할 수 있고, 결함 진단 정확도는 98%에 육박한다. 전문 인력을 대체할 수 있어 검사 비용도 절반 이하로 줄였다. 김기수 딥아이 대표는 "지금까지 열교환기 검사에 사용하는 제품과 설루션을 100% 외국산에 의존했는데, 국산화에 성공한 점도 쾌거"라고 했다.

AI 비파괴검사 설루션은 SK 울산CLX 전체 공정에 AI 기반 첨단기술을 도입하는 '스마트플랜트 2.0'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스마트플랜트 1.0이 기존 공정 및 설비에 빅데이터와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하는 단계였다면. 스마트플랜트 2.0은 AI와 DX(디지털 전환) 기술로 공정 자동화를 한층 더 고도화하는 개념이다.

SK에너지 구성원이 SK이노베이션에서 자체개발한 설비자산관리 시스템 '오션허브'(OCEAN-H)를 활용해 회의를 하고 있다.(SK이노베이션 제공)

SK 울산CLX에는 이미 AI 기술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몸체에 센서와 열화상카메라를 장착한 로봇개 행독(행복+dog)이 여의도 면적의 세 배(250만 평)부지 공장을 돌아다니며 설비 상태를 체크하고, 드론이 150m 높이로 떠올라 정유탱크 지붕을 검사한다. 작업자들이 공정 설비를 수리할 때도 증강현실(AR) 기반 스마트비계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다.

스마트플랜트 2.0 프로젝트가 딥아이처럼 울산 지역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과의 협업으로 추진되는 것도 특징이다. SK이노베이션(096770)이 자체 개발한 설비자산 관리 시스템 '오션허브'(OCEAN-H)도 울산 정보통신기업 인사이트온이 참여했다. SK이노베이션이 머신러닝에 필요한 빅데이터를 제공하고, 스타트업이 AI 기반 신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정창훈 SK 에너지 담당은 "울산CLX는 2016년 기존의 스마트팩토리와는 다른 '스마트플랜트' 개념을 업계 최초로 도입, AI를 접목해 (공정을) 지능화·고도화하고 있다"며 "SK의 60년 이상 축적된 도메인(사업 영역) 지식과 국내 IT기업의 기술을 융합해 총 40여 개 과제 중 10여 개 과제를 직접 개발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자체 개발한 AI 설루션을 더 고도화해 상업화에도 나서고 있다. 딥아이와 개발한 AI 비파괴검사 설루션은 배관·보일러·탱크·자동차·항공기 부품 분야로 확장할 계획이다. 오션허브는 이미 울산지역 정유·석유화학 업체 5개 사를 고객사로 확보해 35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향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해외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의 중소기업·스타트업 협업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AI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최 회장은 지난 25일 울산포럼에서 "개별기업이 AI를 이용해서 경쟁력을 갖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AI·DX 속도를 올리려면 다수 기업이 데이터를 공유해 머신러닝의 속도를 배가하는 '공생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서관희 SK에너지 기술·설비본부장은 "SK 울산CLX의 정유·석유화학 전문성을 바탕으로 AI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경쟁력을 확보해 가고 있다"며 "SK 울산CLX는 국내 최초 정유공장에 이어 국내 최초 스마트플랜트 도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만큼 확실한 성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