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겨도 만신창이…'쩐의 전쟁' 최대 피해자는 회사[고려아연 전쟁]

2조 빌려온 MBK, 1조 빌리려는 최윤범…戰後 손실 복구 '후폭풍' 예고
지분 다툼에 멍드는 고려아연…"금융자본 공격에 취약한 산업자본 경종"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고려아연(010130) 경영권 분쟁이 종착지로 치닫고 있다. 영풍(000670)-MBK파트너스 연합은 공개매수 가격을 66만 원에서 75만 원으로 높였고, 고려아연은 4000억 원대 기업어음(CP)을 발행하며 대항공개매수 초읽기에 들어갔다. '쩐의 전쟁' 덩치가 3조 원대로 커진 건데, 누가 이기더라도 정작 고려아연 사업 동력은 크게 약화하는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이르면 30일 대항공개매수를 공식화할 것으로 보인다. 영풍과 MBK는 33.1%, 최 회장은 현대차·한화·LG화학 등 백기사(우호 세력)를 합쳐 약 34% 지분을 확보 중이다. 국민연금과 자사주를 뺀 23%가 승부처인데, 이중 기관·외국인 6%는 최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된다. 이에 최 회장은 추가 6% 이상 지분을 추가 확보해 경영권을 지키는 전략을 짰을 공산이 크다.

빚 끌어와 경영권 분쟁…누가 이겨도 '청구서 후폭풍' 불가피

재계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3조 원이 넘는 '역대급 실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영풍과 MBK는 고려아연 지분 7~14.6%를 확보(주당 66만 원)하기로 했는데, 공개매수가를 주당 66만 원에서 75만 원으로 13.6% 높이면서 필요 자금이 당초 2조 원에서 2조2721억 원으로 늘었다. 최 회장 측도 최소 방어선(6%) 확보에만 1조 원 안팎의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

관건은 '분쟁의 후폭풍'이다. MBK는 조달 자금의 약 80%인 1조8000억 원을 NH투자증권과 영풍의 차입금으로 조달한다. 최 회장도 자금 대부분을 재무적 투자자(FI)나 전략적 투자자(SI) 등 외부에서 충당할 것으로 보인다. 양측 모두 빚으로 지분 경쟁을 벌이는 셈인데, 높은 금리와 수익률을 약속하고 자금을 유치했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누가 승자가 돼도 '막대한 청구서'는 불가피하다.

먼저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경영권을 지켜냈을 경우다. 시장에선 최 회장에게 돈을 댈 우군으로 한국투자증권, 일본 소프트뱅크, 미국 베인케피탈 등 증권사 및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거론된다. 공개매수 기간 주가가 뻥튀기됐고, 급전이 아쉬운 최 회장으로선 다소 파격적인 조건으로 자금을 유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투자자들이 향후 지분 처분을 할 때 최씨 일가 지분까지 묶어서 팔 수 있는 공동매각요구권(드래그얼롱)을 걸었거나, 최씨 일가에 자신들의 지분을 공개매수 가격보다 비싸게 사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완전히 등을 돌린 장씨 일가의 지분 33%가 여전히 남는 것도 불씨다.

MBK의 부담도 상당하다. 자금 2조 2721억 원 중 1조 8000억 원(NH투자증권 1조5000억·영풍 3000억 원)을 내년 6월 만기, 이율 5.7%에 차입했다. 9개월 후 만기까지 이자만 약 766억 원에 달한다. 시장은 MBK가 펀드 출자자(LP)에 보장해야 할 내부수익률(IRR)이 10% 중반대로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와 증권가는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잡더라도 투자금 회수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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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분쟁 속 멍드는 고려아연…"세계 1등 경쟁력 어쩌나"

재계는 고려아연의 사업 동력 약화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출혈 경쟁을 불사한 지분 다툼은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게 되고, 이를 보전하는데 회삿돈이 쓰이면 미래 사업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영풍과 MBK는 배당률을 높일 예정인데, 고려아연의 신사업인 '트로이카 드라이브'(신재생에너지·이차전지소재·자원순환) 투자 재원이 기존보다 줄어들 수 있다.

비철금속 제련 세계 1위인 고려아연의 경쟁력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가기간산업 운영 경험이 없는 MBK는 물론, 최윤범 회장이 경영권을 지키더라도 제2·3의 경영권 방어전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온산제련소 일등공신' 평가를 받는 이제중 고려아연 최고기술책임자(CTO) 부회장을 비롯한 핵심기술진들이 '전원 사표'를 꺼내며 MBK를 상대로 배수진을 친 상황이다.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도 있다. MBK와 영풍은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최소 10년 이상 장기 투자하고 구조조정도 없을 것이라고 수차례 밝히고 있지만, 업계 시선은 싸늘하다. 11년 전 ING생명의 전례 때문이다. MBK는 2013년 ING 생명을 인수할 때도 10년 이상 보유, 고용 승계를 단언했지만, 인수 후 5개월 만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인수 5년 만에 ING 생명을 매각해 2조 원의 차익을 챙겼다.

산학계에선 고려아연의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와 동시에, 금융자본에 매우 취약한 산업자본의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MBK가 승리한다면 엄청난 산업계 스캔들이 될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금융자본의 위력에 대한 경종을 울리게 될 것"이라며 "(다른 회사들이)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