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태풍에 휘청이는 폭스바겐…'예방주사' 맞은 현대차, 추격 고삐
안방인 '독일 공장 폐쇄' 폭스바겐, 최대 시장 中서 발목 잡혀
일찌감치 中 발뺀 현대차…"유연한 생산 강점 기반, 경쟁력 강화 질주"
- 이동희 기자
(서울=뉴스1) 이동희 기자 = '전화위복.'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 충격을 준 '독일 국민차' 폭스바겐의 독일 공장 폐쇄 소식 이후 현대차그룹을 향한 국내 완성차 업계의 반응이다. 일찌감치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은 현대차(005380)그룹은 전략을 빠르게 수정해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시장에 집중하고 인도 등 신흥시장을 공략하며 중국 충격에서 벗어났다.
전문가들은 세계 2위 폭스바겐그룹의 후퇴로 3위인 현대차그룹의 2위 도전이 가속할 것이라면서도 폭스바겐의 이번 발표 단초가 된 중국 자동차와의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현대차 역시 언제든 내몰릴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국에 밀린 폭스바겐…87년 역사상 첫 독일 공장 폐쇄
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일(현지시간) 폭스바겐그룹은 성명을 통해 "유럽 자동차 산업이 어렵고 심각한 상황"이라며 "독일에서 최소 완성차 생산 공장 1곳, 부품 공장 1곳 폐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폭스바겐그룹 올리버 블루메 최고경영자(CEO)는 "새로운 경쟁자가 유럽 시장에서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 내 제조 공장을 유지한다는 것은 기업 경쟁력을 뒤처지게 한다"며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폭스바겐의 발표 이후 글로벌 완성차 업계,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크게 요동치고 있다. 독일 국민차로 불리는 폭스바겐은 유럽을 대표하는 완성차 업체다. 독일에서만 6개 완성차 공장을 운영 중이다.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공장을 폐쇄한 적이 없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87년 폭스바겐 역사상 가장 큰 전략적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폭스바겐의 최근 실적은 아직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지난해 폭스바겐그룹 총판매량은 924만대로 전년 대비 12% 성장했다.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430만대로 글로벌 판매 2위를 지켰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폭스바겐의 '단호한 결단' 이유가 나온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폭스바겐그룹의 최대 시장이다. 글로벌 모터쇼에서 폭스바겐이 매번 중국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폭스바겐그룹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50%대에 달했으나, 지난해 14% 수준까지 하락했다. 폭스바겐 단일 브랜드 기준 중국 판매량도 2019년 420만대에서 2023년 320만대로 줄었고, 1위 자리도 비야디(BYD)에 뺏겼다.
중국 부진을 안방인 유럽 시장에서 만회했다면 버텼겠지만, 오히려 중국 자동차에 안방을 내주고 있다.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폭스바겐의 점유율은 2021년 23.5%를 정점으로 하락해 올해 7월 현재 19.3%까지 떨어졌다. 중국 전기차의 점유율은 17.8%로 폭스바겐 뒤를 바짝 쫓고 있다.
◇ 현대차 中 부진, 글로벌 전략 재편 단초…미국·인도로 눈 돌려
중국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은 폭스바겐뿐만은 아니다. 국내 대표 업체인 현대차그룹은 폭스바겐보다 더 일찍 부진의 늪에 빠졌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베이징, 창저우, 충칭 등에서 5개 완성차 공장을 운영했다. 연간 생산량은 250만대 수준으로 해외에서 가장 큰 생산지였다. 판매량도 2016년 180만대(기아 포함)에 달해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5위 도약의 발판이 됐다. 하지만 중국 로컬 브랜드의 부상과 자국 업체 밀어주기 등에 밀려 지난해 판매량은 24만5000대에 그쳤고 점유율도 1%대로 줄었다.
현대차그룹은 빠르게 글로벌 사업 전략을 재편했다. 2021년 베이징 1공장을 매각한 데 이어 지난해 충칭 공장을 추가로 팔았고 그러면서 중국 공장을 수출 기지로 삼았다. 기아도 같은 전략을 펼쳤다. 그 결과, 기아는 올해 2분기 2019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사업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동안 현대차그룹은 인도 등 아시아 시장과 미국과 유럽 등 신흥시장에서 생산 시설을 확충하고 판매를 늘려 성과를 냈다. 미국과 인도가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10월 연산 30만대 규모의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HMGMA) 가동을 앞두고 있고, 인도의 경우 생산 규모 100만대에 달하는 최대 해외 생산지로 도약했다. 제너럴모터스(GM) 인도 공장 인수로 향후 인도 생산량은 150만대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현재 상황을 예견하고 중국 사업을 줄이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중국 의존도를 줄인 게 현재의 글로벌 3위 도약의 밑거름이 됐다"며 "시장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한 게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 "폭스바겐 獨 공장 폐쇄, 현대차 역전 가속화…中 업체와 경쟁력 우위·경각심 필요"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 730만대를 기록하며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3위 자리를 차지했다. 2위 폭스바겐그룹과 격차는 195만대다. 올해 상반기 기준 현대차그룹과 폭스바겐그룹의 판매량은 각각 362만대, 430만대로 약 70만대 수준의 차이를 보였다.
폭스바겐의 독일 공장 폐쇄와 구조조정 계획은 현대차그룹에 호재라는 평가다. 짧은 시간에 따라잡기는 어렵지만, 폭스바겐의 생산량 감소와 투자 지연 그리고 판매 둔화세 등은 현대차그룹의 추격 속도를 더 올려 순위 변동이 더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가 평가하는 현대차그룹의 최대 강점은 유연한 생산이다. 전동화 전환과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모두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을 비롯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전동화 계획을 철회하거나 연기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2030년 전기차 200만대 판매 목표를 변경하지 않았다.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등 혼류 생산을 앞세워 캐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전기차 투자는 지속해 전동화 우위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를 새롭게 선보이겠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폭스바겐이 촉발한 유럽 완성차의 지각변동이 현대차그룹에 호재는 맞지만, 경각심을 늦추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현대차그룹 역시 전 세계 시장에서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 놓여 있어 경쟁력 강화에 더 몰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 안방인 국내 역시 중국 전기차 진출 확대가 예고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이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 장벽을 쌓고 있어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오히려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며 "브랜드 인지도와 상품 기술력, 지역별 맞춤 전략으로 시장에서 보다 기민하게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yagoojo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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