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복병'에 본계약 무기한 지연…"한국타이어 '1.8조 딜' 멈칫"

조현범 회장 '車열관리' 한온시스템 인수 MOU 이행 '고심'…실사·협상 차질에 유상증자 납입일 넘겨
주가급락·실적악화 '적정가 논란'에 노조 집단행동 가세…"M&A 포기 배제 못해"

한국앤컴퍼니 본사 전경.

(서울=뉴스1) 이동희 기자 = 한국앤컴퍼니그룹의 한온시스템(018880) 인수·합병(M&A)이 무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월 M&A 발표 이후 주가 급락과 실적 악화, 우발 채무 등으로 순식간에 '비싼 매물'이 된 데다 노조 리스크까지 불거지며 매수측에서 회의론이 커지고 있어서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000240) 회장의 마음이 돌아선 것 같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161390)는 2014년 한온시스템 지분 19.49%(1조 800억 원) 인수 이후 10년간 호흡을 맞춰온 세계 2위 자동차 공조업체 한온시스템을 인수함으로써, 전기차 열관리시스템 기술력을 활용해 타이어·배터리에 이어 전기차 핵심 부품 사업군을 보유한 미래 모빌리티 첨단기술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인수가 완료되면 그룹의 자산총액은 약 26조 원 규모로 커져 국내 30대 그룹(현재 47위)에 진입하게 된다.

◇ '8월 3일' 1차 유상증자 완료일 넘겨…주가·실적·재무 악화에 '적정가 논란'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타이어는 지난 5월 3일 이사회를 열고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의 한온시스템 지분 50.5% 중 25%(1조 3679억 원)와 유상증자로 발행할 신주 12.25%(주당 5605원, 총 3651억 원)를 총 1조 7730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의했다. 이를 위해 한온시스템 최대주주인 한앤컴퍼니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행완료시 현재 2대주주인 한국타이어는 지분 50.53%를 확보하게 된다.

MOU 체결 후 한국타이어는 최대 10주간의 실사를 거쳐 본계약을 체결하고 유상증자 대금을 납입해 최대주주로 올라설 계획이었는데, 가장 낙관적인 유상증자 납입일이었던 전날(8월 3일)까지 유상증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관련 공시에 따르면 유상증자 납입일은 "8월 3일 또는 '거래 종결의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된 날로부터 3영업일이 경과한 날' 또는 '당사자들이 달리 합의하는 날' 중 나중에 도래하는 날"이다.

'선행조건'은 MOU에 따른 주식매매계약(SPA)의 적법·유효한 체결 및 정부의 기업결합 승인이다. 즉 본계약인 SPA를 원만하게 체결하고 정부 승인을 얻었다면 8월 3일까지 유상증자를 마무리하는 게 가장 빠른 일정이었으나, 이제 특정한 타임라인 없이 본계약 체결이나 양측의 별도 합의를 기다리는 상황이 됐다. 8월 3일을 넘겼다고 MOU를 어긴 것은 아니지만, 유상증자 관련한 유일한 고정 날짜가 지난 만큼 양측의 실사 및 협상에 차질을 빚으며 본계약 일정이 무기한 지연되고 있는 셈이다.

실사 과정에서 떠오른 변수로는 우선 한온시스템 주가 급락과 실적 악화, 우발채무 등이 거론된다.

한온시스템 최근 주가 추이.(네이버증권)

한온시스템 주가는 최근 마지막 거래일인 지난 2일 주당 4360원으로 마쳤다. 한국타이어의 인수 발표 직전 장중 6800원까지 급등했으나 이후 줄곧 미끄러져 현재 5월 고점 대비 30% 이상 빠졌다. 이로 인해 한온시스템 지분 25%를 주당 1만 250원에 사기로 한 한국타이어는 한앤컴퍼니에 130% 이상의 프리미엄을 얹어주는 셈이 됐다.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이어서 한온시스템 일반 주주들의 반발은 물론 매수측 한국타이어 이사회 내에서도 적정가격 여부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가 올라오고 있다.

또 한온시스템 신용등급은 올해 초 AA-에 '부정적' 평가가 붙으며 등급 하향 위기다. 지난 5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지수 구성 종목에서도 제외됐다. 8일 공개 예정인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약 40% 줄었을 것으로 증권가는 예상한다. 실사 과정에서 발견된 우발 채무도 문제가 되고 있다.

증권가 전망도 어둡다. 대신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수익성 개선 지연, 대주주 한앤코(PE) 지분 오버행 가능성, 고정비 과부담, 유럽 물량 둔화 등을 들어 목표가를 7800원에서 4900원으로 40% 가까이 하향했다. 미래에셋증권과 키움증권도 1만 원대에서 각각 5700원, 5500원 등으로 낮췄다. 외국계인 노무라증권은 매도 의견을 냈다. 안젤라 홍 노무라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부문 수익성 약화, 금융비용 부담 등으로 영업이익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내연기관 차량 가격 인하 압박 등도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한온시스템 평택공장.(한온시스템 제공)

◇ M&A 협상 테이블 앉겠다는 한온시스템 노조…한국타이어 '당혹'

특히 한온시스템 노조 움직임이 매수측 인수 의지를 흔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가 물리력을 동원하면서 실사팀이 한온시스템 평택·대전·울산·경주 공장 등 주요 현장에 진입조차 못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온시스템 노조는 10주 실사 기간에 현장을 원전 봉쇄하며 계약 전 3자 협상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의 협상에 노조를 끼워달라는 얘기다. 제안을 거부할 경우 인수 협상 자체를 막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노조는 고용 보장, 위로금 지급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타이어는 과거 수십 년간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하는 등 노사관계가 원만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더욱 한온시스템 노조의 태도에 당혹감을 나타내고 있다.

노조 측의 협상 저지로 한온시스템의 실사 의무 이행, 양해각서상 몰취 조항의 위약벌 여부 등을 놓고 양측이 MOU 이행 소송까지 갈 가능성도 있다. 한 대형로펌의 M&A 전문 변호사는 "한국타이어가 확인 실사 등 인수 대상에 대해 검토하지 않은 채 최종 계약에 사이닝(서명)할 확률은 거의 없다"며 "협상 주체들이 MOU 이행 소송 등 복잡한 법적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2008년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이후 대우조선해양 노조 방해로 정상적인 실사를 못 했고 인수를 포기했다. 산업은행은 거래 무산 책임을 한화 측에 돌리며 MOU 이행 보증금을 가져갔으나, 2016년 대법원은 "이행보증금은 몰취 조항의 위약벌 성격보다, 손해배상액 예정으로서의 성질이기 때문에 이행보증금 몰취는 부당하다"는 취지로 한화 측 손을 들어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0년의 투자 끝에 이번 인수를 결심한 조현범 회장의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실사 과정에서 돌출된 여러 사안들을 종합할 경우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양측이 합의 하에 MOU를 없던 일로 하거나, 매몰비용을 치르더라도 이 선에서 멈추는 선택지가 있다.

일각에선 동갑내기인 한상원 한앤컴퍼니 회장과의 친분으로 봐서 추가 협의를 거쳐 본계약에 이를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재계에서는 고개를 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숫자에 밝은 조 회장이 M&A에 친분을 고려하는 성향은 아니다"라며 "그보다 새로운 노조 리스크가 그룹 전반에 이식되는 위험부담을 조 회장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길지가 관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온시스템과의 본계약 협상 진척 및 무산 가능성에 대해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아직 협상을 진행 중으로, 자세한 내용은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yagoojo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