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저가 후판에 힘들어도"…'반덤핑 제소' 결심 어려운 철강업계

中 철강재 밀어내기에 국내 후판 점유율 2년만에 11%→20%대…현대제철, 산업부에 제소 나서
포스코·동국제강은 '신중'…"고객사와 관계 및 中 보복 가능성 등 감안해야"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국내 철강업계가 중국의 저가 후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놓고 미묘한 엇박자를 타고 있다. 중국이 과잉 생산한 후판을 저가로 국내에 밀어넣자 국내 2위 철강사인 현대제철이 정부에 반덤핑 제소를 했지만, 같은 이해당사자인 포스코와 동국제강은 득실을 따져보며 섣불리 입장을 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中, 도 넘은 '저가철강' 밀어내기…현대제철, 반덤핑 제소

31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004020)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중국 업체들의 저가 후판 수출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반덤핑 제소를 했다. 산업부는 60일간 검토를 거쳐 조사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조사개시가 이뤄지면 예비 판정, 본조사 판정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으로 선박 건조를 비롯해 교량, 중장비, 송유관, 방산 등 산업 전반에 사용된다. 국내 철강사들은 매출의 15%를 후판 판매로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과잉 생산된 후판을 저가에 해외로 '밀어내기'를 하는 실정이라 업계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23일 발간한 '중국 저가 수출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의 철강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1%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수출 단가는 19.4% 하락했다. 한국철강협회 통계로는 지난해 중국산 철강재 수입은 873만톤으로 전년보다 29.2% 증가했다.

중국산 후판만 놓고 봐도 수입량이 매년 급증세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중국산 후판 수입은 지난해 112만톤으로 전년보다 73% 증가했고, 올 상반기 누적 수입량은 68만8000톤으로 전년 동기보다 12% 증가했다. 업계는 국내 유통되는 중국산 후판 점유율이 2022년 11%에서 올해 상반기 20%대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클래드 후판 제품사진(동국제강 제공)

◇"득실 셈법부터"…포스코·동국제강, 일단 관망세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수익성에 '직격탄'을 맞은 철강업계 입장에선 중국산 후판 반덤핑 제소에 발 벗고 나설 법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내 후판 생산 철강사는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460860) 3곳인데, 이중 현대제철만 제소했다. 포스코와 동국제강은 반덤핑 제소에 대한 찬반 입장을 구체화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정부가 덤핑 조사를 개시하려면 해당 제품 국내 생산량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사업자나 반덤핑 조사에 대해 찬반 의사를 밝힌 국내 생산자(무응답 제외) 중 50%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조사 신청 접수 시점부터 60일 내에 동종업계 의견이 수렴되지 않거나 찬성률이 절반을 밑돌면 반덤핑 제소는 철회된다.

국내 철강사들이 선뜻 단체행동에 나서지 않는 배경에는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다. 중국산 후판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이익과 관련 고객사들의 반발 가능성, 국내 업계가 중국과 갈등을 빚었을 때 초래될 수 있는 무역 보복 등 다양한 변수와 그 득실을 따져보고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조선용 후판'이 대표적이다. 조선용 후판은 철강사 후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조선사 입장에서도 후판 값이 선박 건조 비용의 20~30%를 차지해 매년 후판 가격 협상이 벌어질 만큼 민감한 품목이다. 한편 조선용 후판은 애초 관세 대상이 아니어서 반덤핑 관세가 부과돼도 실익이 크지 않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후판의 국내 유입에 따른 업계 피해는 명백하고, (제소를 통해) 반덤핑 관세가 부과되면 조선용 후판을 제외한 분야에선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현대제철이 다른 철강사와 협의 중이지만 아직 다른 철강사들은 득실을 검토하며 관망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