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인도의 부상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영국은 현재 기준으로 117개국을 침략했던 나라다. 역사상 최대의 식민국가였다. 영국이 그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나아가 경영까지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본국이 안전하다. 영국섬은 지정학적 입지가 세계 최상이다. 육군이 별 필요 없어서 해군을 양성했다. 과거 영국 해군은 무서운 게릴라였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고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글로벌화 한 영국 해군은 첨단의 관리기법을 발달시켰는데 나중에 민간에 전수되어서 글로벌 기업들이 탄생했다. 기업정책과 외교정책은 같은 선상에 있었다.

영국은 민주주의가 발달해 권력이 분산되었다. 권력이 분산된 정치체제는 국제교역에 필수다. 정치적 자유는 안보에도 유리하다. 산업혁명으로 구축한 기술 우위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영국의 문화적 파워가 피정복지 통치에 도움이 되었다. 우리 인간들은 문화적으로 열등한 그룹의 지배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지만 그 반대는 상대적으로 쉽다.

그런 영국의 식민지 중 가장 크고 의미가 컸던 나라가 인도다. 1600년에 정부의 유령회사인 동인도회사를 만들어서 다른 유럽 국가들을 물리치고 야금야금 손에 넣었다. 대대적으로 인프라를 건설해 완벽하게 수탈했다. 영국이 수에즈운하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 이유도 인도와의 ‘교역’ 때문이다. 1877년에 빅토리아여왕이 인도 황제가 되면서 인도는 공식적으로 영국령이 된다. 1차대전 때는 120만명의 인도인이 영국에 징집되었다. 1947년 8월 15일 자치령이 되면서 사실상 독립했고 1950년에 인도공화국이 출범했다.

인도의 인구가 2023년에 중국을 넘어섰다. 15억명을 향해 가고 있다. 비교적 젊은 인구다. 소득격차가 큰 것이 문제지만 경제는 연평균 7%대로 성장하고 있다. 식량도 자급한다. 만성적인 물 부족과 거친 자연환경, 질병 등등 어려운 점이 아직 많기는 하다. 다인종, 다민족 국가여서 사용 언어도 2천 개가 넘는다.

인도는 너무나 커서 잘 안 어울리는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반도 국가다. 3면이 바다다. 서쪽, 북쪽에는 파키스탄, 중국 같은 적대적인 나라들이 있고 동쪽에 있는 나라들은 경제적 역량이 인도와 활발하게 교류할 만큼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인도는 그냥 혼자 간다. 글로벌 파워가 될 수는 없는데 그 대신 아무도 인도를 건드릴 수 없다. 동맹이 필요 없어서 지금도 미국이든 러시아든 인도에 이렇다 할 영향력이 없다.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쿼드에 들어 있는데 아시아판 나토로 진전되기는 난망이다.

중국은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골고루 사이가 나쁘다. 여러 곳에서 국경분쟁이 있다. 요즘은 인도와 특히 원수지간이다. 병사들이 거의 맨손으로 혈투를 벌이는 일까지 일어났다. 중국에 인도가 눈엣 가시인 이유는 인도양을 가로막고 있어서다. 그래서 중국은 인도와 사이가 나쁜 파키스탄과 손잡고 620억 달러를 들여 바다로 나가는 루트를 건설 중이다.

인도는 그 자체 의미를 가진다는 말이 있다. 외부 요인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생존도 하고 입지가 있다는 뜻이다. 위치도 유럽-중동과 아시아 사이에 있어서 이런저런 일에 초연해 보인다. 사방으로 팽창하기 어려운 위치지만 반대로 누가 번거롭게 굴 수도 없는 위치다. 무역에 의존할 필요도 없다. 제철, 복제약, 자동차가 큰 산업인데 각각 글로벌 2위, 2위, 4위다.

인도는 페르시아만과 매우 가까워서 에너지 문제가 없다. 그뿐이다. 그런데 만일 페르시아만에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한다면 인도가 해결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해관계 있는 강대국 중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해군력은 글로벌 10위 안에 드는데 영국보다 위다. 4만5000톤급 디젤추진 항공모함도 두 척 운용한다. 페르시아만을 나와 말라카해협으로 향하는 모든 에너지와 물자는 안다만니코바르해협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인도의 관장 아래 놓인다. 지금까지 인도가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럴 이유도 딱히 없었고 미국이 다 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의 극작가 토머스 칼라일은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욕을 먹었다. 셰익스피어가 아무리 위대한 문인이지만 인도와 인도 사람들에게는 모욕이다. 그런데 사실 와전된 것이다. 칼라일은 “인도 제국은 어쨌든 사라지겠지만,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고 썼다. 그래도 그다지 좋게 들리지는 않는다. 인도에 의문의 1패를 안겼다. 칼라일은 나름 인도를 영국 문화 최고의 아이콘과 대비했다는 변명은 할 수 있겠다. 신지정학 시대에 인도가 어떻게 부상할지 주목된다.

bsta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