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유럽의 존 윅 스웨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아바, 이케아, 발렌베리, 그리고 노벨상으로 유명한 스웨덴은 바이킹(노르드인)의 후예다. 역사상 가장 민첩하고 전투력이 강했던 해양 민족이다. 국가로서의 스웨덴은 16세기부터 존속해 왔다. 그 후 역사의 대부분을 조용히 지냈고 양차 대전에도 개입되지 않았다. 지정학적으로는 사실상 은퇴했는데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러시아가 불러냈다. 이제 나토 회원국이다. 2024년 3월 7일 자로 가입했다. 그래서 누가 스웨덴을 존 윅에 비유했다.

스웨덴은 인구 1000만명을 조금 넘는 나라지만 침략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나라다. 나라의 위치와 지형 때문이다. 오죽하면 러시아의 특수부대 스페츠나츠가 체첸과 함께 스웨덴을 침투훈련 지역으로 써왔을 정도다. 스웨덴을 침공하려면 노르웨이나 핀란드를 거쳐야 한다. 피오르의 나라 노르웨이를 거치는 것은 의미가 없는데 국경 거의 전부가 고산지대다. 핀란드를 거치더라도 강이 가로막고 있고 스웨덴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간선도로는 E45 하나밖에 없다.

총연장 3200km에 이르는 스웨덴의 해안선은 모두 22만 개의 섬이 가로막고 있다. 우리가 섬이 많은 나라로 아는 필리핀과 일본이 7000 개 내외에 ‘불과’하다. 22만 개의 섬은 적이 해안 지형을 다 파악할 수 없게 하고 무수히 많은 방어 기지를 숨길 수 있다. 수도 스톡홀름의 아래쪽에는 거대한 고틀란드섬이 항모처럼 버티고 있다.

지리적, 지형적 이점은 스웨덴이 소수정예의 군을 양성하고 훈련시킬 수 있게 해 준다. 정규군, 예비군 합해서 6만 정도인 스웨덴은 대군 유지 비용이 들지 않아서 상당한 국방비를 최첨단 무기와 기술에 효과적으로 사용해 왔다.

스웨덴은 다섯 척의 완전 무소음 디젤잠수함 운용으로도 유명한 나라다. 발틱해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잠수함들이 다니기에는 수심이 얕아서 사실상 스웨덴 잠수함들이 관장하고 있다. 그리고 스웨덴 하면 뭐니뭐니 해도 98년의 역사를 가진 공군이다. 발렌베리그룹의 방산업체 사브가 제작하는 80기의 JAS 39 그리펜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펜은 F-16 급인데 비포장 활주로 700미터만 있어도 운용이 가능하다. 이웃 핀란드가 도입하는 F-35 64기와 함께 미군의 부담을 덜어주어서 미군이 아시아에 집중하는 것을 돕게 된다.

스웨덴은 민간에서 총기를 많이 소지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이 100명당 89정으로 1위, 상시 내전 상태인 예멘이 2위, 사실상 전 국민이 예비군인 스위스 3위인데 스웨덴은 32정으로 글로벌 10위다. 최근 부쩍 늘어난 범죄단체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 문제지만 민간 총기는 유사시에 전투력이 된다.

나토의 공용 언어는 영어와 불어지만 사실상 영어만 쓰인다. 스웨덴 사람들은 영어를 아주 잘한다. 필자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지내던 집 주인 할머니는 딸을 스웨덴에 출가시켰다. 여름마다 손자 셋을 데리고 독일로 내려왔다.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 영어와 독일어를 아주 잘했다. 스웨덴어 자체가 영어와 독일어를 섞어놓은 것같이 들렸다. 언어 능력은 다국적 전장에서의 소통은 물론이고 정보 수집과 공유에도 필수다.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대국들은 국토방위뿐 아니라 다양한 조건의 원격지 출정에 대비해서 병력과 장비, 무기체계를 운용해야 한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스웨덴은 국토방위에만 집중하면 된다. 비용도 적고 국토와 인근만 잘 파악하면 되므로 잠재적 침략자와 비교하면 가성비 높게 군을 운용할 수 있다. 전략과 전술도 대국들과 달리 자기 국토에 맞는 내용으로 개발하고 훈련하면 그뿐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스웨덴은 오히려 냉전 종식 이후 군사적 측면을 소홀히 해 온 감도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분위기가 급속히 달라졌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북동쪽이 약한 나토의 약점을 보강해 준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핀란드보다 한 해 더 걸렸다. 튀르키예와 헝가리가 어깃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이참에 챙길 것들이 생각났다. 튀르키예는 스웨덴이 쿠르드노동자당의 활동을 국내에서 허용한다는 이유, 친러시아 성향 정권이 들어선 헝가리는 스웨덴이 헝가리를 비민주적으로 묘사하는 교육자료를 사용한다는 박약한 이유를 각각 들었다. 튀르키예는 EU 가입 지원 약속과 미국의 F-16 판매, 헝가리는 EU의 지원금 동결 해제와 교환으로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찬성했다.

전문가들이 앞으로 세상이 험해질 것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난 200년 동안 은퇴해서 조용히 살던 존 윅이 나토 가입까지 한 것을 보면 역사가 새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은 확실하다.

bsta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