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 2인3각' 미·일·대만의 질주…"이러다 붕괴"[사면초가 K-반도체①]

AI발 반도체 패권 지각변동…미일 '원팀' 대응·대만 파운드리 독주
한국은 기업이 '나 홀로 분투'…"정부, 과감·신속한 투자·정책 시급"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재현 기자 = AI(인공지능)가 촉발한 '칩워'(반도체 전쟁) 속 'K-반도체'가 흔들리고 있다. 지각변동을 틈타 AI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한 경쟁국들의 공습이 예상보다 거세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자국 반도체 기업 간 합종연횡이 두드러진다. 3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AI 반도체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5세대 제품 'HBM3E' 대량 양산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다. 한발 더 나아가 마이크론은 이른바 'AI 반도체 공룡 기업'으로 불리는 엔비디아에 HBM3E를 납품하기로 했다.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과 올해 세계 최초 1.8나노(㎚·10억분의 1m) 칩 양산을 예고한 미국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칩 주문 생산을 맡기로 했다. 2030년까지 파운드리 시장 2위로 올라서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2위 기업은 각각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다.

미국 정부는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하고 있다. 2022년 제정된 반도체법에 따라 미 정부는 자국에 반도체 제조시설을 투자한 기업에 총 280억 달러(약 37조 원)의 보조금을 나눠 지급하는데, 확정된 3곳 중 2곳(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글로벌파운드리스)이 이미 미국 기업이다. 이어 혜택을 볼 기업은 인텔이라는 전망도 지배적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정부가 인텔에 100억 달러(약 13조 원)를 보조금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대만 TSMC의 자회사인 일본첨단반도체제조회사(JASM)가 일본 구마모토현(県) 기쿠요마치에 반도체 신공장을 준공하는 모습. 24.02.14 ⓒ AFP=뉴스1 ⓒ News1

반도체 재부흥을 꿈꾸는 일본에서는 정부가 아예 전면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7일 캐나다 텐스토렌트와 2나노 기반 AI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고 이를 2028년부터 양산하겠다고 밝힌 신생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는 사실상 일본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기업이다.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에 9조 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해 회사를 키울 계획이다.

TSMC 구마모토 공장 유치도 일본 정부의 역할이 컸다. 일본 정부는 TSMC에 4조2000억 원 이상의 보조금을 풀며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7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한 TSMC 구마모토 제2공장에는 약 6조5000억 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대만도 파운드리 시장 독주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따른 반도체 생산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제조 공장 확충에 나서고 있다.

TSMC를 앞세워 일본과 이른바 칩 동맹을 맺은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지난해 59%였던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올해 62%로 늘어나고, 대만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 합계도 67%에서 70%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만 내 움직임도 주목된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이 제안한 '대만판 실리콘밸리'가 올해 착공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만 행정원은 2027년까지 1000억 대만달러(약 19조3000억 원)를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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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나 홀로 분투' 중이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론의 8단 HBM3E보다 기술력이 뛰어난 12단 HBM3E 개발에 성공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D램 시장 점유율은 45.7%로 1위다. SK하이닉스는 현재 HBM 시장의 절반을 점하며 독주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에 이은 2위(31.7%)다.

업계에서는 적극적 투자와 정책적 뒷받침을 요청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한국의 주력 산업인데도 지원 예산(올해 1조 3000억 원)이 경쟁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각종 규제로 제조 인프라를 갖추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정부는 다른 나라처럼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 적극적인 투자를 이끌고 규제도 철폐해야 위기에 몰린 K-반도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jh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