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심사 넘느라 출혈 컸던 대한항공…'소송 대장' 美 더 두렵다

영국·중국서 슬롯 반납한 아시아나 기업결합…EU 승인 받느라 화물사업부 매각
美 당국, 과거 반독점에 여지없이 칼 꺼내…여객노선 국적사 재배분 여부 관건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세워진 대한항공 항공기 앞으로 아시아나 항공기가 이륙하고 있다. 2024.1.14/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금준혁 기자 = 진통 끝에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 심사를 넘긴 대한항공이 또 다른 고비인 미국 경쟁당국을 맞이한다. EU가 심사 과정에서 운수권 등을 국내 항공사에 배분하기로 결정하며 국부유출에 대한 비판은 피하게 됐다. 다만 기업결합에 엄격한 잣대를 내미는 미국 경쟁당국이 이번 심사를 계기로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1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EU 경쟁당국은 대한항공(003490)이 제출한 시정조치안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내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아시아나항공(020560) 화물사업부를 매각하고 유럽 4개 노선에서 대체 항공사를 진입시키는 대한항공 시정안에 대해 이같은 판단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스페인 바르셀로나·이탈리아 로마·프랑스 파리의 운수권과 슬롯도 국적사로 재분배가 유력해 국부유출 논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앞서 대한항공은 영국과 중국에서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영국에서 양사가 갖고 있던 17개 슬롯 중 7개를 반납하기로 했고 중국에서도 46개의 슬롯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고스란히 외국항공사로 넘어가게 됐다. 슬롯은 해당 국가에서 운수권을 보유한 항공사가 특정 시간대에 이착륙 할 수 있는 권리로 국가 항공 경쟁력과 직결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승인을 계기로 미국이 EU보다 더한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U가 대한항공이 화물사업 독점을 피하기 위해 당초 제안했던 화물기의 저비용항공사(LCC) 이관에 퇴짜를 놓고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을 관철시킨 선례가 남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방 경쟁당국인 법무부(DOJ)가 지적한 한국-미주 화물운송 독점 우려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으로 해소되지만 여객노선의 독점 문제는 남아 있다.

지난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심사 결과에 따르면 미주 5개 노선에서 양사의 합산점유율은 80%에서 최대 100%까지도 올라간다. 에어프레미아가 진입하기 이전 기준이라고 하지만 대한항공-델타항공 조인트벤처와 아시아나항공의 합산 점유율이 그만큼 압도적이라는 의미다. 대한항공은 미국 빅3 항공사 중 하나인 델타항공과 조인트벤처 체결로 한미 노선을 공동 운영한다.

그간 DOJ는 여객노선 독점에 대해 소송으로 대응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3년 아메리칸항공과 US에어웨이스의 합병으로, 당시 DOJ는 연방독점금지법 위배를 들어 기업결합을 막는 소송을 제기했다. 아메리칸항공은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과 더불어 미국의 빅3 항공사로 꼽힌다.

결국 아메리칸항공은 소송이 제기된 지 3개월 후에 워싱턴 레이건공항과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각각 104개, 34개 슬롯을 처분하고 로스앤젤레스(LA)·시카고·댈러스·보스턴·마이애미 5개 공항에서 일부 지상시설도 매각하는 조건으로 기업결합을 승인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3월에는 미국 1위 LCC 제트블루의 스피릿항공 인수에도 제동을 걸어 현재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같은 해 5월 DOJ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에 대해 소송을 고려한다는 현지 보도가 나온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DOJ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운수권과 슬롯을 재분배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를 얼마나 국적사로 배분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합병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달리 에어프레미아가 미주노선에 안정적으로 진입했고 한미 노선의 주요 승객이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인 점을 들어 미국을 설득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인 유나이티드항공의 입장에서는 공동 운항편을 운항할 수 있는 항공사가 사라지는 만큼 반대급부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유나이티드항공의 주력 한미 노선은 인천~샌프란시스코다. 미주노선은 항공자유화 협정이 있어 국가 간의 운수권보다도 원하는 시간대에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 공항 슬롯의 중요성이 크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DOJ와의 시정조치 방안 협의를 통해 경쟁제한 우려 해소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정상적인 승인 과정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rma1921k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