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컨테이너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화물선의 다수가 컨테이너선이다. 컨테이너가 없다면 항구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물건을 싣고 내릴 때 모든 물건을 각각 움직이고 점검하고 쌓아두고 창고로 옮겨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엄청날 것이다. 파손, 부패, 절도는 필연적이다. 컨테이너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대형 컨테이너 1개에 20톤의 화물을 실어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운송하는 비용은 같은 노선 이코노미 클래스 비행기표 값과 비슷하다.

컨테이너는 트럭을 통째로 배에 싣는 아이디어에서 기원한다. 1956년 미국에서 말콤 맥린(Malcolm McLean)이라는 운송업자가 발명해서 특허출원한 것이다. 맥린은 시랜드(SeaLand) 창업자이기도 하다. 컨테이너 출현 이전에 화물은 작은 나무 박스에 포장되어서 선적되고 하역되었는데 1956년 당시 선적 비용이 톤당 5.86달러였다고 한다. 이 비용이 컨테이너의 도입으로 톤당 0.0016달러로 낮아졌다.

운송비용에서 항구사용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반이었던 시대에는 항만에서의 모든 작업도 수작업이거나 간단한 장치를 활용하는 정도였다. 컨테이너의 도입은 항만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불안하게 했고 그 때문에 노동계의 저항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항만노조는 자동차노조와 함께 미국의 양대 노조다.

컨테이너는 국제교역의 증대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다루기 쉽고 기계화가 가능하며 화물의 파손, 도난 위험도 없다. 특수컨테이너는 움직이는 냉동고이기도 하다. ISO탱크는 액체나 화학물질을 운반한다. 인건비도 절감되었고 항만 사용 시간에 따르는 비용도 절약되었다. 컨테이너 시대가 되면서 바다를 통한 밀수도 많이 줄었다. 컨테이너는 해상운송뿐 아니라 육상운송과 항공운송에도 사용되면서 복합운송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항구에서 바로 트럭이나 기차에 옮겨진다.

컨테이너에 실은 화물은 안전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재고를 줄이기 시작했다. 운송이 위험하고 오래 걸렸던 시대에는 창고 비용이 들어도 재고를 많이 가지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컨테이너 운송 덕분에 그럴 필요가 줄었다. 그러다 보니 생산자들도 소량 생산체제로 전환했다. ’적시 생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적시 생산은 거래 쌍방의 현금 흐름을 개선시켰다.

현재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선은 2만3992 TEU의 에버 에이스다. 400m 길이다. 에버그린 소속인데 13척 중 6척을 삼성중공업이 건조했다. 2만3756 TEU로 별로 큰 차이 아닌 2위 컨테이너선은 알제시라스다. 대우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건조해 HMM이 12척을 보유하고 있다. 399.9m 길이다.

컨테이너가 아무리 효율적이라 해도 나라마다 항구마다 크기가 제각각이라면 효율성에 한계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컨테이너는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규격에 의해 생산된다. 발명자의 모국인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질서 하에서 가능했다. 그리고 규격이 통일되는 것이 모두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정리될 수 있었다.

컨테이너 발명자인 맥린은 1982년에 포춘지가 선정하는 비즈니스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2000년에는 국제 해상 명예의 전당에 ‘금세기의 인물’로 올랐다. 맥린은 컨테이너를 배에 효율적으로 싣는 방법과 컨테이너 선적에 적합한 선박의 제작도 주도했기 때문에 컨테이너선의 발명자라고 불러도 되겠다. 2001년에 87세로 타계했는데 장례식 날 아침에 전 세계 모든 컨테이너선이 일제히 뱃고동을 울려 고인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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