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기업'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에 왜 미국·유럽이 이래라 저래라 할까
EU '화물사업부 매각' 요구에 대한항공 '진땀'
신규 사업자 진입 어려워…노선별 독점여부 가리는 것이 추세
- 금준혁 기자
(서울=뉴스1) 금준혁 기자 = 아시아나항공(020560) 이사회가 두 차례의 진통 끝에 화물사업부 매각 방안을 가결했다. 대한항공(003490)은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의 요구에 부합하는 시정조치안을 마련하며 급한 불을 껐다.
이번 기업결합 과정에서 가장 화제였던 것은 화물사업부 매각안이다. 여론은 '반쪽짜리 합병'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여객노선과 화물노선을 떼고 나면 당초 목표로 했던 세계 10권의 '메가캐리어'에서 멀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화물매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한다. EU 경쟁당국과 협의한 결과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안만이 승인을 위한 유일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국내 기업임에도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를 받아야할까. 기본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데다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어렵고 운수권·슬롯을 기반으로 경쟁력이 결정되는 항공산업 특성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일정한 규모 이상의 회사가 합병할때는 신고 의무가 있다. 이중에서도 항공은 단순히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노선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노선별 독점여부를 심사하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예컨대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매각하지 않는다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으로 한국~유럽 화물노선에서 양사의 합산 점유율은 59.6%가 된다. 한 회사가 나머지 외국항공사를 모두 더한 40%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병 회사에 필적할만한 규모의 항공사가 가까운 시일 내에 시장에 진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화물사업에는 전용 화물기, 지상조업 인프라 등 필요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며 화주가 믿고 화물을 맡길 네트워크도 형성해야 비로소 뛰어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유럽이라는 하나의 시장에서는 대한항공이 가격결정권을 가진 독점회사가 되는 것이고 운임을 올려도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외국항공사가 이를 대체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안정적으로 화물을 맡기던 화주의 입장에서는 운임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는게 아니라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운송회사를 바꿀 이유가 없다. 또 외국항공사 입장에서도 한국은 취항한 여러 국가 중 하나이고 운항 편수를 늘리는 것이 이득이 아닐 수 있다.
여기에 운수권과 슬롯이라는 개념도 살펴봐야한다. 운수권은 정부 간의 항공회담을 통해 항공기 운항 횟수를 정하고 그 횟수 내에서 항공기를 운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다만 한국은 미국, 일본, 유럽 등 47개국과 항공자유화 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항공사들이 해당 국가에서는 직접 협의해 양국 간 노선을 운항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알짜로 주목받는 것은 오히려 슬롯이다. 슬롯은 항공기가 공항에서 이·착륙을 하거나 이동하기 위해 배분된 권리를 말한다. 원하는 황금 시간대에 몇 번이나 더 이착륙할 수 있는지가 슬롯의 가치를 좌우하게 된다. 어떤 시간대에 슬롯을 가졌는지가 항공사뿐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으로 꼽히는 이유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과 비슷한 예가 있다. 미국의 빅3 항공사 중 하나인 아메리칸항공은 2011년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연방법원에 파산신청을 한다. 이후 US에어웨이스와 합병으로 회생을 도모했다.
미국의 연방 경쟁당국인 법무부(DOJ)는 2013년 기업결합이 연방 독점금지법을 위배한다고 판단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DOJ는 치열한 경쟁구도에 있던 양사가 합병되면 경쟁이 해소되기 때문에 운임과 부가서비스 요금이 인상되고 항공편수는 감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항공사는 항공권값을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을 자주 활용하는데 가격을 경쟁할 이유가 사라진다면 이같은 프로모션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아메리칸항공은 워싱턴 레이건공항과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각각 104개, 34개 슬롯을 처분하고 로스앤젤레스(LA)·시카고·댈러스·보스턴·마이애미 5개 공항에서 일부 지상시설도 매각하고 나서야 기업결합을 승인받을 수 있었다.
물론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가 무산되더라도 기업결합 자체는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승인받지 못한 국가에서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기업결합이 무의미해진다. 앞서 HD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EU에서 기업결합 승인을 받지 못하자 합병 작업을 중단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대한항공은 14개 주요 경쟁당국 중 EU, 미국, 일본의 기업결합 승인을 남겨두고 있다.
rma1921k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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