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아이언 돔이 막지 못하는 것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캠퍼스에서 한 10분 남쪽으로 걸어 내려오면 팔마흐박물관이 있다. 팔마흐박물관은 이스라엘 국방부가 만든 것인데 오늘날 모사드의 기원이 되었다는 건국 전 무장투쟁단체의 활약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선글라스를 쓴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안내도 군인들이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디에서나 그렇다. 필자 같은 외국인 방문객은 이들 군인들에게 ‘교육’ 대상이다.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버전으로 역사를 설명한다. 필자가 텔아비브에서 머물렀던 집 주인의 장인은 당시 거의 100세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젊었을 때 부부가 팔마흐 단원이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이 박물관을 추천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보험회사의 부회장을 지낸 그 노인은 텔아비브대 법대를 졸업했고 모세 다얀과 동급생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흔한 이미지는 병영국가다. 거리에 자동소총을 휴대한 남녀 군인들이 항상 보인다. 모든 레스토랑, 슈퍼마켓, 학교에서 소지품을 검색한다. 사회 전체가 초긴장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스라엘에 도착하면 분쟁지역을 즉시 벗어나라는 외교부 경고 문자가 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힘은 평시를 전시같이 긴장하고 사는 것이라기보다는 모사드의 정보력과 외교부의 외교력, 그리고 유사시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력과 훈련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도 받는다. 이스라엘에 비우호적인 발언을 한 의원 사무실 전화는 하루 종일 불이 나고 문 앞에 직접 항의하겠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친다. 내가 아는 한 유대인 변호사는 하루 휴가를 내 의원 사무실에 종일 전화기를 돌렸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더 무서운 것은 경쟁 후보에 대한 재정지원이다. 반드시 낙선시킨다. 여기에 당한 한 전직 의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세련된 방법이 동원된다고 치를 떨었다.

이스라엘이 원래 호전적인 나라는 아니다. 골다 마이어 총리가 말했듯이 “아랍이 총을 내려놓으면 평화가 오지만 이스라엘이 총을 내려놓으면 대학살이 온다.” 그래서 생존을 위한 공격 능력과 미사일 방어체제에 공을 들인다. 하마스가 남부 도시에 쏘는 로켓을 이스라엘은 아이언 돔으로 방어한다. 2011년 작동을 시작했던 아이언돔은 요격률이 90%가 넘는다. 저고도 방어무기여서 지상에서 뻔히 보인다. 대피하지 않고 요격 장면을 구경하거나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대사관에서 필자가 만났던 이스라엘의 전 국방장관은 이렇게 정리했다. 아이언 돔의 가치는 미사일을 요격해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막는 데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면 충돌로 발전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미사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보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로켓이 이스라엘 땅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험악한 설전은 오갈지언정 무력 충돌은 거기서 차단된다. 특히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보복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제사회의 여론을 악화시킨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과도한 대응은 전 세계 인권 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아이언 돔은 평화뿐 아니라 인권에도 기여한 셈이다.

이번에 이스라엘이 한꺼번에 2000 발이 넘는 로켓과 지상의 테러 공격이라는 전무후무한 기습을 당한 이유는 정치다. 건국 이래 국가적 집중력이 가장 저하되었다고 보일 정도로 분열이 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부패와 비리로 사법처리될 지경에 이르자 아예 나라의 사법체계를 뜯어고쳐 위기를 모면하려 한 희대의 인물이다. 극단주의 유대교 정당의 협조로 겨우 정권을 유지했다.

네타냐후의 소위 ‘사법개혁’은 대법원 판결을 의회가 과반수 결의로 뒤집을 수 있고 대법관 임명에 의회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입법부가 행정부(히틀러)에 입법권을 위임했던 나치독일의 수권법에 비교되기도 한다. 국방장관과 검찰총장도 반대했고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50만 명 참가 시위도 발생했다. 미국을 필두로 우방국들도 우려를 표명했다. 국제금융계 일부는 이스라엘을 손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극단주의 유대교 정당인이 국가안보부 장관이 되어서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에 기습적으로 들어와 불경하게 경내를 휩쓸고 갔다. 이슬람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이 사건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하마스 같은 악성 테러 집단에 기막힌 호재로 작용했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벌어진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아이언 돔은 정치의 부패와 분열로 생기는 외환을 막을 수는 없다.

네타냐후 정부는 국내외의 반대와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웨스트 뱅크에 불법적인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도 가속화 했다. 이른바 ‘2국 체제 해법’ 지지자들을 경악하게 할 정도로 팔레스타인 접수를 밀어붙였다. 정착촌 건설은 대개 아무런 근거 없이 땅을 차지해 집을 짓고 그 보호를 위해 이스라엘군이 들어오는 식으로 진행된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멀쩡히 살고 있는 집을 철거하기도 한다고 하니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원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샌디 톨런의 책 ‘레몬 트리’(2006)가 잘 그린다.

텔아비브대 건물 복도에는 재학 중에 전사하거나 테러로 희생된 학생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대학 박물관은 큰 굴뚝 모양의 구조물 두 개를 지붕에 얹고 있다. 한 교수가 필자에게 “유대인들에게 굴뚝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후세는 어떤 건물을 세우고 방문자들에게 어떤 설명을 하게 될까. 하마스가 이번에 한 천벌 받을 짓들이 묻힐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가 빨리 정리되고 이스라엘의 정치가 정상화되어서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bsta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