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파느니 유찰…"HMM 감당할 '큰형님' 나서라"[빅딜 긴급점검㊥]

자금력 떨어지는 중견그룹 인수시 동반부실·해운 경쟁력 약화 우려
유력 대기업 현대차·포스코 계속 거론…유찰시 산은 '물밑 협상' 기대감

부산항 감만부두와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선 모습. (뉴스1 자료사진)ⓒ 뉴스1

(서울=뉴스1) 이동희 금준혁 기자 = 2017년 2월 16일 서울중앙지법은 한진해운에 파산선고를 내렸다. 세계 7위 국내 최대 해운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순간이다. 한진해운 파산은 수출에 기댄 한국경제에 후폭풍을 불러왔다. 2016년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 이후 수출실적 100만달러 이상 화주업체 332개 가운데 217개(65.4%)가 해상운임 상승의 어려움을 겪었다.

값비싼 교훈을 치르고서야 정부는 해운사 지원에 나섰고 당시 홀로 남았던 현대상선은 HMM(011200)으로 이름을 바꿔 세계 8위 선사로 살아남았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로 이뤄진 채권단 아래에서 약 7년을 보낸 HMM은 이제 새 주인을 찾아 나섰다.

역시나 최대 관심사는 누가 HMM을 인수하느냐다. 입찰 결과 해운업계는 실망감이 컸다. 기대를 모았던 유력 대기업이 아닌 하림·LX·동원그룹 등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중견그룹만 참여해서다. 세계 5위 선사인 독일의 하파크로이트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국부 유출과 해외 매각 우려가 커지면서 최종 인수 후보군에서는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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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그룹 HMM 인수시 동반부실 및 수출경쟁력 훼손 우려

산은과 해진공은 지난달 4일 HMM 입찰적격후보(숏리스트)로 하림·LX·동원그룹을 선정했다. 현재 세 그룹은 지난달 6일부터 HMM 인수를 위한 실사에 들어갔다. 세 그룹은 약 2개월간 실사를 하고 본입찰 참여 여부를 확정한다. 예정대로 진행되면 HMM 매각은 연내 마무리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하림·LX·동원그룹 모두 인수전 참여 완주 의지가 높다고 보고 있다. 그룹별로 계열사나 사업 영역과의 시너지를 강조하며 각자의 인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HMM 매각 유찰 목소리는 계속 나온다. 중견기업 인수로 국내 최대 선사인 HMM의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HMM의 매각가는 7조원 안팎이다. 현금성 자산은 LX가 2조5000억원, 하림 1조5000억원, 동원 6000억원 수준이다. 빚을 내서 인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해운시장은 지난해까지 코로나19 특수로 호황을 누렸으나, 올해 들어 침체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인 해운업은 앞으로 상당 기간 어두운 터널을 지날 가능성이 높은데, 모기업이 이를 버틸 만한 체력을 갖추지 않은 경우 동반부실의 나락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세계 1·2위 해운사인 스위스 MSC와 덴마크 머스크(Maersk)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이 2025년부로 공식 해체되면 글로벌 해운시장은 치킨게임에 돌입할 전망이다. 시장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공격적인 운임 할인 경쟁으로 해운사 간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금력이 떨어지는 중견그룹이 인수할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HMM의 미래 투자를 위해 쓰여야 할 현금성 자산 14조원에 손을 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은 1~2년 수익을 내고 10년을 버티는 사업"이라며 "친환경과 해운시장 재편 등 투자가 절실한 시점에서 HMM이 인수 중견기업의 곳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라고 말했다.

HMM의 경쟁력은 곧 수출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코로나19 기간 어려운 상황에서 HMM은 국내 중소기업 수출을 위해 해상운송 지원사업을 한시적으로 추진했다. 수출품을 실어 나를 컨테이너선을 찾지 못한 중소기업에 선적을 지원했다.

HMM의 6800TEU급 컨테이너선 ‘HMM 홍콩(Hongkong)호 모습.(HMM 제공)ⓒ 뉴스1

◇HMM 매각 유찰 후 '새판' 목소리…대우조선해양 사례 주목

결국 HMM 매각은 돌고 돌아 '대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대기업이 HMM을 인수해 국내 해운사업 경쟁력을 높여 수출산업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주장이다. HMM 매각 공식화 전까지 시장에서 거론됐던 대기업은 현대차, 포스코 등이다.

HMM은 과거 '왕자의 난'으로 갈라진 현대그룹의 일원(현대상선)이었다. 현대차그룹이 범(凡)현대가의 적통을 이어받은 만큼 HMM을 인수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HMM의 김경배 대표가 과거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것도 인수 가능성에 힘을 더했다. 자동차운반선(PCTC)을 활용해 해운사업을 하는 계열사 현대글로비스도 있어 해운업이 마냥 낯선 것도 아니다.

포스코도 인수 적격자로 꾸준히 업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대량의 철광석을 소비하는 포스코는 대형 화주로 HMM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점이다. 철강재 외에도 이차전지 소재 등 그룹 내 막대한 글로벌 화물 수요를 감안하면 포스코로서는 HMM 인수를 통한 물류비용 절감 효과만 해도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HMM 매각이 유찰되면 대기업이 구원투수로 등판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거론되는 기업들은 여전히 참여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PCTC, 벌크선 등과 컨테이너선의 사업 시너지가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현대차그룹은 2016년에도 옛 현대상선 인수를 제안받았으나 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다만 일각에서 과거 산은이 매각을 추진하다 좌초된 대우조선해양 사례를 들어 물밑 협상이 이뤄져 '대기업의 HMM 인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공개 매각 무산 후 한화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공개 입찰로 전환한 스토킹호스 방식으로 추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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