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점령한 '욕설·혐오' 현수막들…잠자는 집시법에 기업만 '끙끙'
대기업 사옥 시위 현장, 과도한 혐오 표현과 사실 왜곡 만연…법원 판결도 소용 없어
'개인 이익' 챙기려는 무리한 시위로 변질…"시대상 반영한 집시법 개정 필요"
- 이동희 기자
(서울=뉴스1) 이동희 기자 = 도심에서 대기업들을 상대로 벌어지는 다수의 시위와 집회에서 혐오 표현과 사실을 왜곡한 주장 등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명예훼손성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있고, 인신공격성 비방과 욕설이 스피커를 통해 여과 없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허위 사실도 공공연하게 유포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시위 과정에서 왜곡된 사실이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된다는 점에서 관련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는 성숙한 시위 문화 정착을 위해 달라진 시대 상황을 반영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서울 광화문 A기업 사옥 앞에는 '범죄경영진 구속처벌' 등의 명예훼손성 문구가 현수막 여러개가 걸려 있다. 강남역 B기업 주변 현수막에는 정돈되지 않은 빨간색 글씨체로 '갑질하고 직무 유기하는 XX' 등의 자극적 문구가 적혀 있다. 양재동 C기업 인근에는 기업은 물론 관할구청까지 비방하는 '대기업 X개 노릇 XX구청' 등의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이 외에도 도심 곳곳의 대기업 사옥 앞에는 기업과 경영진 등을 비방하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인 점을 겨냥해 영문으로 작성한 현수막과 특정인의 신변을 노출시킨 설치물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출퇴근 무렵에는 고성능 스피커와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비방, 욕설 등 소음이 거리를 메우고, 혐오 표현 및 허위 사실 등이 담긴 시위 모습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거나 동영상 형태로 온라인 상에서 빠르게 확산된다.
대기업을 겨냥한 시위에 유독 사실관계를 왜곡한 주장이나 모욕적이고 혐오스러운 표현 등 무리수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여론에 민감한 대기업으로부터 빠르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수년째 시위에 시달라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 사옥 주변 시위는 이미 시시비비가 가려진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허위 주장을 내세워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억지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현행법 상에서 기업은 마땅한 대응책 없이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승소해도 시위 자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위자는 패소해도 법원이 금지한 표현만 수정한 현수막을 제작해 시위를 재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실제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10년 이상 시위를 이어온 A씨는 혐오 표현 등 무분별한 시위로 법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았지만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법원은 '세계적 XX 기업, 고소고발 남발한 OO기업, Global company Kia Motors is a corrupt and inhumane company' 등 문구와 장송곡 등 사용을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A씨는 문구만 수정한 현수막을 다시 내걸고 출퇴근 시간에는 장송곡 대신 운동가요를 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최근 집회 시위는 공공의 가치보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있다. 1인 시위, 릴레이 시위, 촛불 시위, 플래시 몹, 온라인 집회, 인터넷 생중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위 문화가 확산했다.
이 과정에서 공공 질서 위협, 타인의 기본권 침해 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집시법 개정 등 적절한 규제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국민의 인격권과 사생활 보호 등 취지의 내용을 담은 집시법 개정안 다수가 발의됐으나, 아직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돼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현재는 개인적인 사유 또는 여러 이해 관계가 얽힌 다양한 성격의 집회 시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열리고 있다"며 "과거 정치적 집회와 시위 등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집시법을 이제는 현실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yagoojo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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