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공사, KAI 매각 독단추진 '논란'

매각시 관계부처 승인받아야...방사청장 "사전조율 없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CI(자료제공=한국항공우주산업) © News1

</figure>한국정책금융공사가 산업통상자원부, 방위사업청 등 유관부처와 아무런 사전협의없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매각을 진행중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다.

KAI는 방위산업체여서, 산업부와 방위사업청의 승인없이는 KAI를 매각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금융공사는 이 기관들과 사전협의를 거쳐 매각을 진행해야 하는 게 절차상 순리라는 것이다. KAI 인수자가 확정되더라도 이 유관기관들이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 매각은 물거품이 된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18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드러났다. 이날 이용걸 방위사업청장은 "KAI 매각과 관련해 정책금융공사와 아직 협의를 못해 매각 진행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방사청의 입장을 정리해 조만간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KAI 매각에 대해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TV토론회에서 "KAI 민영화 과정에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인사청문회에서 "KAI는 국내 항공우주산업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한 만큼 국내 항공우주산업의 발전, 고용승계, 지역경제발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향후 처리방안을 관계부처 등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책금융공사는 현재 KAI 매각을 서둘러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산업부, 방사청, 경남 사천지역 등 관계부처와 어떤 협의도 거치지 않고, 오로지 주주협의회를 통해서만 매각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책금융공사 관계자는 "정책금융공사는 주주협의회의를 개최하는 등 실무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라며 "매각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방사청과 협의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정책금융공사 관계자의 말처럼 현행법상 정책금융공사가 관계부처와 협의하지 않고 KAI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방위사업법 제35조에 따르면 국내 업체·사람 등이 방위사업체를 인수·합병하려면 미리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산업부 장관은 매수자를 승인하기전에 방사청장과 협의해야 한다.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절차상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가운데 정책금융공사는 지난 18일 주주사들에게 매각의향을 묻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번주내로 의향서를 접수받아 주주협의회를 열고 오는 24일부터 매도자 실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정책금융공사는 7월초 매각공고를 내고, 7월말까지 인수의향서 접수 및 예비입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어 9월말까지 본입찰 및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10월초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하고 11월 중으로 매각절차를 종결한다는 방침이다.

정책금융공사가 관계부처와 사전조율할도 없이 KAI 매각을 서두르는 것은 매각가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책금융공사가 KAI 매각을 서두르는 것은 주주협의회가 깨지기 전에 비싼 값에 매각하라는 주주들의 압박 때문일 것"이라며 "만약 주주협의회가 깨지면 매각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AI 주주협의회의 공동매각 시한은 올해말까지다. 올해말까지 KAI를 매각하지 못하면 내년부터는 KAI 주주들이 개별적으로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 다만 올해 공동매각 절차가 시작되면 이를 고려해 6개월까지 공동매각 약정기간을 연장할 수는 있다. KAI 매각지분은 정책금융공사가 보유한 26.4% 가운데 11.41%를 포함해 삼성테크윈(10%)과 현대자동차(10%), 두산그룹(5%), 오딘홀딩스(5%), 산업은행(0.34%) 등 41.75%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에 KAI 매각을 완료하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라며 "KAI 민영화를 업적으로 삼아 정책금융공사 사장 자리를 유지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한 초석으로 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 사장은 지난 정부시절부터 KAI 매각에 강한 의지를 표명해왔다. 그는 지난해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KAI를 재입찰하지 않으면 해외투자가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KAI 매각은 시장공개(IPO)과정에서 이미 약속했던 사항으로 다른 공공기관 민영화와 달리 지배주주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KAI 노조는 정책금융공사의 KAI 매각 상황에 따른 대응을 위해 지난 18일 서울로 상경해 오는 24일까지 집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KAI 노조 관계자는 "정부에서조차 신중히 진행하기로 한 매각을 졸속으로 진행해서는 안된다"며 "KAI와 경남 사천지역 항공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KAI 매각전에 참여했던 대한항공과 현대중공업은 정책금융공사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한항공측은 지난해 두차례의 공개 입찰을 포함해 지금까지 5번이나 KAI 인수전에 참여했기 때문에 KAI 매각이 다시 진행된다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중공업 역시 조선업의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새로운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KAI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KAI는 지난해 총매출액 1조5346억원을 기록해 전년대비 19.3% 성장했다. 영업이익도 전년대비 20.3% 오른 1258억원을 달성했다. 올해 수주목표는 6조2000억원으로, 현재까지 약 3조원의 수주계약을 달성했다.

rje3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