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현대차 손잡자 영풍은 400억어치 더샀다…최씨·장씨 '큰싸움'

현대차 5% 인수로 최씨측 고려아연 지분, 장씨측 앞서…장형진 영풍 고문, 고려아연 이사회 불참
장 고문 개인회사, 8.4만주 추가매입 '반격'…두 집안 74년 동업관계 이상징후 과열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배지윤 기자 = 고려아연(010130)이 현대자동차(005380)와 '배터리 동맹'을 맺으면서 영풍(000670)과의 74년 동업 관계에 금이 가고 있다. 현대차라는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우호지분은 장씨 일가(영풍)를 앞질렀다. 영풍도 추가 지분을 사들이며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와 현대모비스가 공동 투자해 설립한 해외법인 HMG 글로벌(HMG Global LLC)은 유상증자 방식으로 고려아연 지분 5%를 인수하기로 확정했다. 주당 가격은 50만4333원으로 총 거래액은 약 5272억원 규모이다.

◇우호지분 확보?…고려아연 현대차와 손잡은 이유

고려아연이 현대차와 동맹을 맺은 표면적인 이유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에 대한 사업 제휴다. 현대차가 니켈 원료 공동 구매, 광산 개발 프로젝트 공동 투자 등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기준을 충족하는 배터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핵심 원재료 조달에 힘을 싣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여기에 한가지 시각을 보탠다. 현대차가 확보한 지분이 최 회장의 우호지분이 되는 만큼 향후 고려아연의 계열분리를 가속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의 친분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영풍측이 최근 고려아연 이사회에 불참한 것도 이런 맥락과 관련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고려아연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 일원인 장형진 영풍 고문은 이번 현대차와의 협력을 논의한 지난달 30일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사회 11명 가운데 유일한 불참자다.

창업주 2세인 장 고문은 지난해 고려아연이 한화그룹 자금을 유치할 당시 열린 이사회에도 불참했다. 지난해 8월 고려아연은 미국법인인 '한화H2에너지USA'로부터 4717억원을 투자받고 한화와 한화임팩트와 주식교환을 결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고려아연은 한화에 지분 8.85%를 넘겼다. 이 역시 두 집안의 지분경쟁 과정으로 해석됐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고려아연의 지분구조도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최 회장과 그의 우호지분은 현대차 지분 5%를 포함할 경우 32% 수준으로 늘어난다. 이번 유상증자로 장씨 일가의 지분은 일부 희석된다. 유상증자를 마치면 장씨 일가 지분율은 32.66%에서 31.02%로 감소해 최씨 일가와 그 우호지분이 장씨 일가 지분을 넘어선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듯 장씨 일가도 최근 들어 고려아연 지분을 다시 공격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장 고문의 개인회사 에이치씨는 5월 2일부터 8월 28일까지 장내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주식 8만4299주를 매입했다고 최근 공시했다. 추가 매입에만 약 400억원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에이치씨의 고려아연 지분은 0.32%에서 0.75%로 늘었다.

◇74년 협력관계 이상기류…"계열분리는 쉽지 않을 듯"

과거 황해도 출신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1949년 함께 영풍기업사를 설립한 게 고려아연의 모태다. 이후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장씨 일가는 석포제련소를 맡고, 최씨 일가는 영풍 계열사인 고려아연을 맡아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고려아연 등 비철금속 계열사를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 등은 장씨 일가가 경영을 맡으며 70년 이상 '한 지붕 두 가족'처럼 그룹을 공동 경영해 왔지만, 창업주 3세인 최윤범 회장이 회사를 이끌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2019년 대표이사 사장에, 2022년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최 회장 체제에서 고려아연의 실적 및 경영성과 차이가 벌어지고 최 회장이 의욕적으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영풍 측과 의견 차이가 커졌다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영풍그룹의 매출 70% 이상이 고려아연에서 나오는 '캐시카우'여서 장씨 일가로선 고려아연의 독자행보를 마냥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장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이 계속해서 감소하면 회사 내 입지도 줄어들게 된다.

다만 현행 공정거래법상 당장 계열분리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려면 특수관계인의 주식 보유 비중을 상호 3% 미만(상장사 기준)으로 낮추고 겸임 임원이나 채무관계 등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측도 현재로서는 지분 싸움 논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고려아연 측은 "(현대차와 배터리 동맹은) 사업 활동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영풍 측도 장 고문의 고려아연 지분 추가 매입을 두고 "일반적인 경영 활동이다. 고려아연 지분을 사들인 게 처음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장 고문의 이사회 불참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jiyounba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