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석유 30년…진화하는 제조법·교묘해진 판매수법

[가짜석유의 경제학]②시대따라 가짜 석유 유형도 진화
신나 섞은 '두캔'식부터 세녹스, 리모콘 조작까지
피해 줄이려면 정품업소 확인해야...무폴제 재고해야

(서울=뉴스1) 최명용 기자 =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전국 각지에 주유소를 차려놓고 가짜 휘발유, 경유 등을 만들어 판매한 혐의(석유 및 대체연료 사업법 위반·사기)로 주유소 대표업자 조모씨를 구속했다고 밝힌 28일 서울 마포 광역수사대에서 담당 수사관이 압수된 가짜 석유를 설명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서울, 경기, 충북 등지에 본인 명의로 4개, 동생 조씨 명의로 2개, 지인 A씨 명의로 5개 등 총 11개 주유소를 차려놓고 2010년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가짜휘발유 등 1230만ℓ를 제조·판매해 200억원 상당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3.2.28/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figure>가짜 석유가 수면위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이전까지는 자동차 보유대수도 많지 않았고, 석유제품에 대한 일반의 수요 역시 크지 않았다. 면세 석유 제품을 몰래 빼돌려 암거래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초 유가 급등에 따라 정부가 석유 제품에 특별소비세를 붙이면서 가짜 석유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각종 용제를 섞어 만든 가짜 휘발유를 시작으로 세녹스 파동이 일었고, 최근엔 등유를 섞은 가짜 경유나 주입량을 속이는 수법이 판치고 있다.

가짜 석유를 피할 방법은 있을까. 100% 확실한 방법은 없다. 정품 거래를 업소를 확인해 단골로 거래하는 게 그나마 안전한 방법이다. 연비가 떨어지거나 가짜 석유 의심이 들 땐 신고하는 게 상책이다. 일각에서는 가짜 석유를 근절시키려면 '폴사인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유사가 거래 주유소의 품질을 직접 관리하면 그만큼 가짜 석유 취급 확률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 석유 제조수법 갈수록 다양해져

가짜 석유는 정유업체가 정식으로 유통하지 않는 모든 석유제품을 말한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2조 10호는 '가짜석유제품이란 조연제, 첨가제, 그밖에 어떠한 명칭이든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하거나 사용하게 할 목적으로 제조된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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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가짜 석유는 용제를 섞은 가짜 휘발유에서 등급이 다른 유류제품을 섞는 형태까지 다양하다. 한마디로 가짜 석유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짜 석유 제조가 어려워지면서 눈금을 속이거나 주입량을 속이는 수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품질검사로 적발된 주유소는 254곳으로 2011년 523곳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반면 정량 미달 등 유통상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행위는 지난해 1117건으로 2011년 368건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가짜 석유 제조에 쓰이는 용제를 유통과정부터 관리한 다음부터 가짜 석유를 제조해 판매하는 수법은 크게 줄었다"며 "이제는 유통 단계에서 저급한 석유제품을 혼합하거나 등유와 경유를 섞는 등의 불법이 늘어 또다른 단속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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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캔·원캔…진화하는 가짜 휘발유

1990년대까지만 해도 휘발유에 각종 첨가물을 섞는 형태의 가짜 휘발유가 판을 쳤다. 휘발유에 다른 석유제품을 섞거나 용제와 BTX 등의 성분을 첨가해 가짜 휘발유를 만들었다. 첨가하는 용제 성분은 모두 면세가 되기 때문에 용제 비중을 얼마나 높이느냐에 따라 부당 이익이 커졌다.

2000년대부터는 석유화학제품만 활용해 가짜 휘발유를 만드는 사례가 급증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세녹스나 LP파워 등이 대표적이다. 세녹스는 용제와 톨루엔 등을 섞어 만든 뒤 연료 첨가제란 이름으로 판매됐다.

세녹스는 2002년 6월 프리플라이트란 회사가 만든 연료 대체제다. 2003년 소송에선 가짜 휘발유의 기준이 명확치 않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세녹스는 2004년 소송에서 불법으로 규정됐고 2009년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돼 판매가 중단됐다.

세녹스처럼 용제를 섞어 많든 제품을 '원캔'이라 부른다. 원캔은 주유소나 길거리 제품으로 많이 팔린다. 세녹스와 LP파워를 불법으로 규정한 이후, 각종 용제를 섞은 가짜 휘발유는 특정 브랜드없이 알음알음 소규모로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다.

길거리나 배달을 통해 판매되는 제품 중엔 신나를 활용할 '투캔' 제품도 있다. 투캔 제품은 톨루엔과 메탄올을 섞은 소부신나와 에나멜신나를 따로 보관하다가 자동차에 주입해 연료로 쓰는 방식이다. 인터넷 판매 등을 통해 거래되는 가짜 휘발유가 이같은 투캔 형태다.

◇등유 섞은 가짜 경유, 리모콘 조작까지 교묘해져

최근엔 가짜 휘발유 대신 등유를 섞은 가짜 경유가 늘고 있다. 석유관리원이 지난해 적발한 254곳의 가짜 석유 취급업소 대부분은 가짜 경유를 취급했다.<figure class="image mb-30 m-auto text-center border-radius-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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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경유에 등유를 섞어 파는 것도 세금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다. 경유는 교통세 375원에 교육세(15%) 주행세(26%)가 붙고 부가세 10%를 더해야 한다. 등유는 개별소비세 90원과 교육세 15%, 부가세 10%만 부담하면 된다. 5월 평균 판매가를 기준으로 경유 세후 원가가 1529.29원, 실내등유는 1038.65원이다.

일부 주유소는 경유차량에 등유만 주유해주고 리터당 500원의 이익을 고스란히 챙기기도 한다.

석유관리원은 "용제 단속이 강화되면서 취급이 손쉬운 등유를 활용한 가짜 경유가 확대되고 있다"며 "가짜 경유의 경우 길거리 판매는 많지 않지만 주유소를 통하거나 바이오디젤의 자가 제조를 통해 불법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가짜 석유의 판매 수법은 점점 지능화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야간이나 공휴일을 틈타 게릴라식으로 영업하거나 노상 봉고차 영업, 가정집이나 이중탱크를 이용한 수법 등도 많다. 주유기에 이중으로 펌프를 달아 리모콘 조작으로 가짜 석유가 중간부터 나오도록 하는 수법도 적발된 바 있다.

◇가짜 석유 100% 근절? 관리강화가 답이다

가짜 석유를 100%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관리 강화가 유일한 대안이다. 석유관리원이 가짜휘발유의 원료인 용제 유통을 단속하면서 용제를 활용한 가짜휘발유 제조는 크게 줄었다. 가짜경유의 경우 입고 물량과 출하 물량의 비교 등을 통해 단속이 가능하다. 정부가 주유소 주간보고를 통해 석유 제품의 유통 내용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이같은 이유다.

석유관리원은 "가짜 석유의 판매를 100% 근절할 방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다만 유통단계부터 관리한다면 가짜 석유의 피해를 그만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 운전자라면 정품 인증 주유소를 확인해 거래하는 게 그나마 가짜 석유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일각에선 폐지된 '폴사인제'를 다시 도입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폴사인제란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의 이름을 표시해 놓고 해당 정유사의 제품만 취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유가 인하를 위해 2008년 폴사인제를 전면 폐지했다. 주유소들은 특정 정유사 상표를 게시해도 혼합 판매가 가능하다.

폴사인제 폐지 이후 정유사들은 주유소들의 품질관리를 등한시하고 있다. 정유업체들이 거래 주유소의 품질을 직접 관리하면 가짜 석유 취급을 그만큼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xpe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