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 폭탄' 한숨 돌렸더니 USMCA 개정…가전업계 '첩첩산중'
"USMCA 준수 땐 관세 면제" 한숨 돌렸지만…다시 안갯속
삼성·LG, '中 차단' 원산지 규정 강화 땐 '공급망 재편' 직면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국내 가전업계가 미국·캐나다·멕시코 무역협정(USMCA) 유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당분간 이들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은 관세 면제 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멕시코와 캐나다 현지 공장에서 미국 판매용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USMCA가 내년 개정을 앞두고 있고 3국이 올해부터 협상에 돌입한다. 특히 협상의 골자는 '원산지 규정 강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베트남 등에서 생산된 중간재를 멕시코나 캐나다 공장에 들여와 완제품을 만드는 것을 차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이 막힌다면 가전업계는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는 '공급망 재편'에 나설 수밖에 없다.
7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은 내년 7월 USMCA 재개정을 앞두고 올해 초부터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 USMCA는 지난 2020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해 발효된 협정이다. USMCA는 체결 당사국들이 6년마다 협정 이행 사항을 검토하기로 돼 있는데, 내년에 첫 시점이 도래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USMCA를 '중국 압박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혀왔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0월 멕시코에서 만들어지는 중국산 전기차 문제를 언급하며 "취임과 동시에 멕시코와 캐나다에 USMCA의 6년 차 재협상 조항을 발동하겠다고 통보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USMCA 재검토는 '원산지 규정'을 더 강화하는 데 방점이 찍힐 공산이 크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2일(현지 시각) 각국에 10~49%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의 대미(對美) 우회 수출 통로로 활용됐던 베트남(46%), 태국(36%), 인도네시아(32%)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가혹할 수준의 관세를 책정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겨누는 타깃이 명확한 만큼, USMCA 개정 협상도 중국의 우회 수출을 봉쇄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란 게 업계 분석이다. 김형주 LG경영연구원 경제·정책연구부문 수석연구위원(부문장)은 "USMCA 개정이 (중국의) 우회·간접 수출을 최소화하고 막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멕시코에서 미국향(向) 가전·TV를 생산하는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 입장에선 원산지 규정 강화 움직임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두 회사 모두 중국과 동남아 공장에서 만든 중간재를 상당 부분 멕시코로 수입해 최종 조립하고 있다. '관세 면제'로 한숨을 돌린 것도 잠시, 또 다른 리스크를 대비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리스크 해소 비용'이 천문학적이란 점이다. 멕시코 공장을 경유하는 외국 중간재가 차단될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글로벌 공급망의 상당 부분을 재편해야 한다. 예컨대 중국·베트남 등에서 생산한 제품은 유럽과 아시아로 돌리고, 미국 역내에 중간재 공장 신설해야 할 수 있다. 설비투자(CAPEX)만 수조 원에서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메가 프로젝트다.
김 부문장은 "삼성과 LG를 비롯한 많은 기업의 멕시코 공장들이 부품(중간재)을 동남아나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고, 현행 USMCA는 이런 부품 수입을 인정해 주는 편인데, 미국은 (중간재 공급망을) 분리하고 싶어 할 것"이라며 "원산지 규정이 크게 강화된다면 동남아나 중국에 있던 부품 공장까지 멕시코나 미국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막가파식 정책'이 얼마나 지속될지 불투명한 점도 고민거리다. 당장 USMCA가 내년 7월 개정될 예정이라 기업 입장에선 공급망 재편에 나설 시간도 빠듯하다. 그런데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중간재 공장을 신설했더니 정책이 완화되거나 철회된다면 기업의 설비투자가 헛수고로 돌아갈 수 있어서다.
업계는 정부의 대미 협상을 지켜보며 대응 전략을 짜겠다는 방침이다. LG전자는 상황별 대응 지침인 '플레이북'(play book)을 마련하고 사업부별 리스크를 관리 중이다. 상호관세가 미국 내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유발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동력이 약화할 가능성도 있다.
김 부문장은 "기업들은 즉시 대안을 채택해 실행하기보다 단기적으로 비용 절감에 주력하며 동향을 예의주시할 것"이라며 "내년 (11월) 중간선거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가전업계 관계자도 "당장의 소나기는 피했지만, 미국 정책이 워낙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다"고 토로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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