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HBM 없인 고생길…"삼성 해낼 것" 젠슨 황 응원 받는 처지

삼성전자 4Q 영업익 6.5조 그쳐 '예상 하회'…반도체 2조 후반대 추정
中 공세에 범용 메모리 약세 지속…엔비디아 HBM 공급 지연시 '반도체 한파' 불가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2024.7.7/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인공지능(AI)발 반도체 호황기 속에서도 삼성전자(005930)가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경쟁에 뒤처지면서다. 당분간 레거시(범용) 메모리의 가격 약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삼성전자의 올해 실적도 HBM에 달려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6조 5000억 원의 영업이익(잠정)을 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75조 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은 컨센서스(영업이익 7조 9705억 원)를 큰 폭으로 밑돌았다. 주력인 반도체 부문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모바일 등 세트 사업도 역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디바이스솔루션(DS, 반도체) 부문은 범용 메모리 수익성 악화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적자가 악재로 작용했다. 삼성전자는 연구개발비 증가도 배경으로 들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전년 동기보다 10.65% 오른 75조 원,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대비 130.5% 증가한 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고 8일 공시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중국 업체가 참전해 물량을 쏟아내고 있는 범용 메모리 가격은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PC용 범용 D램(DDR4 8Gb)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11월 20.59% 급락한 뒤 12월에도 유지됐다. USB향 범용 낸드플래시 가격은 지난해 10월과 11월 각각 30% 가까이 떨어졌고, 12월에도 전월 대비 3.48%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사업부별 세부 실적은 오는 31일 발표되지만 DS부문의 4분기 영업이익이 3조 원을 밑돌 것이란 전망이 많아지고 있다. 메리츠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DS부문의 4분기 영업이익을 각각 2조 8000억 원, 2조 6000억 원으로 추정했다.

경쟁사와 달리 삼성전자가 범용 메모리 시황 악화에 직격탄을 맞은 건 이를 상쇄해 줄 카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에서 5세대 HBM(HBM3E)의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시사했지만 결국 연내 공급이 무산된 상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일(현지시간) CES 2025 현장에서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의 HBM3E는 아직 테스트 중"이라며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반면 엔비디아의 HBM 제1공급사인 SK하이닉스는 4분기 8조 원대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5' 개막을 하루 앞둔 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가진 기조연설에서 최신 인공지능(AI) 가속기 '블랙웰(Blackwell)'을 탑재한 지포스 RTX 50 시리즈 그래픽 카드를 공개하고 있다. 2025.1.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업계에서는 AI 메모리의 '나홀로' 성장이 올 상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AI 서버 출하량은 전년 대비 28% 증가, 전체 서버 출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HBM3E가 탑재되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블랙웰'은 AI 서버 시장에서 주요 제품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도 엔비디아향 HBM 양산 여부가 실적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의미다.

황 CEO가 삼성의 HBM3E에 대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긍정적으로 언급한 만큼 삼성전자가 상반기 중 엔비디아의 HBM 공급사로 참여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키움증권은 삼성전자의 HBM3E 사업 본궤도 진입으로 2분기 실적 반등을 예상하기도 했다.

다만 엔비디아 납품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동시에 나온다. 황 CEO가 재설계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CES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의 HBM에 대해 "새 디자인을 설계해야 한다"며 "그들은 매우 빠르게 작업하고 있고,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요구사항에 맞게 HBM3E를 재설계하고 있다면 양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될 경우 삼성전자가 하반기 출시를 예고한 6세대 HBM(HBM4)의 엔비디아 공급 여부가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엔비디아향 HBM3E 물량 대부분을 경쟁사가 선점한 만큼 새 시장을 개척해야 주도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톰 강 카운터포인트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는 역사상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HBM 붐을 놓친 삼성은 새로운 고객에게 AI 메모리를 공급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hanant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