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결산-반도체]AI 성장에 훈풍…그것 말곤 답 없는 게 함정
HBM에 실적 희비 엇갈려…SK하이닉스, 삼성 반도체 年영업익 넘을 듯
中에 레거시 잠식당해 AI 반도체 부진시 생존 위협…파운드리, TSMC 독주 속 삼성 힘겨운 도전
- 한재준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인공지능(AI)으로 점철됐다. AI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지난해 몰아쳤던 반도체 한파가 물러가고 훈풍이 불었다.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고부가가치 D램 및 낸드플래시 수요가 급증한 덕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도 AI 수혜를 톡톡히 누렸는데 이같은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다. 시장이 첨단 제품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레거시(범용) 제품은 중국이 잠식하고 있어 AI 분야 기술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생존을 위협받을 처지에 놓였다.
26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각각 약 16조 원, 23조 4400억 원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시황 악화로 인해 삼성 반도체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각각 마이너스(-) 14조 8800억 원, -7조 7303억 원이라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는데 한 해 만에 수익성이 급증, 흑자로 돌아섰다.
오픈AI의 '챗GPT' 출시로 촉발된 생성형 AI 경쟁으로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내 업계가 호황을 맞이했다.
D램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등 고부가가치 제품이, 낸드플래시 제품군에서는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가 효자 노릇을 했다.
이 중에서도 HBM은 메모리 시장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매출이 급증했다. 전 세계 AI 가속기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초고성능 D램인 HBM 물량을 싹쓸이하면서 HBM이 메모리 업계에 어마어마한 수익을 가져다줬다.
SK하이닉스가 사상 처음으로 삼성 반도체를 제치고 연간 영업이익 1위를 눈앞에 둔 것도 HBM 덕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엔비디아의 제1 HBM 공급사로 5세대 HBM(HBM3E) 8단 및 12단 물량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 3분기 7조 300억 원의 역대급 영업이익을 기록, 삼성 반도체를 추월한 바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올해 웃지 못할 한해를 보냈다. HBM 사업에 대한 오판으로 기술경쟁력에서 뒤처지면서 엔비디아의 품질 검증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고수익 제품 판로 물색에 실패, AI 수혜를 누리지 못한 것이다.
4분기에도 양사의 실적은 엇갈릴 전망이다.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8조 481억 원인 반면, 삼성전자 DS부문은 3조 원 후반대 영업이익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IBK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DS부문 4분기 영업이익을 3조 7010억 원으로 전망했다.
AI 제품 중심의 반도체 시장 성장 흐름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최근 보고서에서 AI와 고성능컴퓨팅(HPC)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인해 내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전년 대비 15% 성장할 거라고 전망했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4세대 HBM(HBM3)과 HBM3E는 물론 내년 출시될 6세대 HBM(HBM4)으로 인해 전년 대비 24%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메모리 분야 성장률(13%)의 두 배 수준이다.
IT 전방산업 둔화와 중국 메모리 업체의 물량 확대로 레거시 메모리 시황이 악화하고 있어 HBM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같은 흐름은 최근 마이크론의 실적 전망에서도 포착된다. 마이크론은 2025 회계연도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 중국 기업의 범용 물량 확대 등으로 범용 D램과 낸드 시장 부진을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HBM의 견조한 수요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HBM 1위 자리를 수성하는 것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판로를 뚫어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D램 내 HBM 비중은 올해 21%에서 내년엔 34%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기준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3%, 삼성전자 38%, 마이크론 9%다. 올해 예상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2.5%, 삼성전자가 42.4%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현재 D램에서 HBM 비중이 20~30%가 되고 있다"며 "과거에는 레거시로도 고정적 이익을 만들어냈지만 최근 중국이 레거시 물량을 쏟아내면서 더이상 레거시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HBM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건 이익을 낼 수 없다는 뜻"이라며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내년이 굉장히 중요한 해다. HBM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위기가 아니라 기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증권업계는 내년 SK하이닉스의 연간 영업이익이 34조 244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의 예상 영업이익(IBK투자증권)은 17조 2100억 원이다.
본격적인 AI 시대가 열리며서 파운드리 시장은 TSMC 독주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공정에서 독보적인 수율(양품비율)과 신뢰성을 자랑하는 TSMC가 주요 빅테크 수주를 독차지하면서 2위인 삼성전자 파운드리와의 격차가 벌어졌다.
올해 3분기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64.9%의 점유율로 1위를 유지했다. 2위인 삼성전자는 시장점유율이 한자릿수인 9.3%로 하락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게이트올어라운드(GAA) 3나노 2세대에서도 낮은 수율로 고전한 탓이다.
시장은 TSMC 1강 체제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IDC는 내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 점유율이 66%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다시 과감한 승부수를 띄우는 전략을 택했다. 4나노 이하 공정의 수율 개선으로 고객사를 확보하면서 내년 상용화 예정인 2나노에서 TSMC와 경쟁하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도 2나노 공정에 집중하지 않겠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원하는 수율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3나노의 양산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2나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hanant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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