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원하면 외부 파운드리로"…고집 버린 삼성 'HBM 결기'
메모리 매출 22조에도 수익성↓…선단공정 전환으로 HBM 집중 전략
엔비디아 HBM3E 공급 임박…HBM4 '턴키' 강요 않고, 파운드리 투자도 축소
- 한재준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삼성전자(005930)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 메모리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주력 사업인 메모리 경쟁력 강화에 힘을 싣기 위해 파운드리 턴키(일괄수주) 전략도 일보후퇴하는 강수를 띄웠다.
삼성전자는 31일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이 같은 내용의 사업 계획을 공유했다.
삼성전자는 3분기 매출 79조 987억 원, 영업이익 9조 1834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분기 기준 최대치로 성장세를 지속했지만 영업이익은 시장 예상치를 하회했다. 주력인 디바이스솔루션(DS,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4조 원에도 미치지 못하면서다.
성과급 등 일회성 비용이 반영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 일회성 비용은 1조 2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를 제외하면 DS 부문 영업이익은 5조 원 이상이다. 이 중에서도 적자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시스템LSI를 제외한 메모리 사업부 영업이익은 최대 6조 원 후반대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수익률은 좋지 않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3분기 매출 17조 5731억 원, 영업이익 7조 300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이 40%에 달한다. 반면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는 22조 2700억 원의 매출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보다 영업이익이 적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 판매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D램 매출 중 30%가 HBM이고 최선단 제품인 5세대(HBM3E) 8단 및 12단 제품 비중도 높다. 삼성전자 또한 D램 매출 중 HBM 비중이 상당하지만 3분기 기준 HBM 매출에서 5세대 비중은 10% 초·중반대에 그친다.
삼성전자는 내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AI 서버향 제품 위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재준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수요 증가가 레거시(범용) 제품보다는 주로 선단 공정 기반의 고용량, 고사양 제품에 의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과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서버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물량을 늘리지 않으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기존 생산라인 공정 전환을 가속화해 범용 제품 생산을 줄이고 고성능·고사양 제품 비중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핵심은 HBM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5세대 HBM3E 8단·12단 제품 양산 및 판매를 공식화했다. 이미 AMD 등 고객사향으로 출하가 진행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엔비디아 공급도 임박했다. 김 부사장은 이날 "현재 주요 고객사 퀄 테스트 과정상 중요한 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을 확보했다"며 엔비디아 성능 검증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시사했다.
4분기 중 엔비디아에 HBM3E 납품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4분기 HBM 매출 중 HBM3E 비중이 5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엔비디아 HBM 공급을 전제로 한 수치로 풀이된다.
이외에 삼성전자는 DDR5X 및 LPDDR5X 생산을 늘리고, 낸드플래시는 64테라바이트(TB), 128TB SSD를 포함한 쿼드레벨셀(QLC) 제품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HBM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승패를 가르는 만큼 삼성전자는 6세대 HBM(HBM4)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5세대에서는 경쟁사에 밀렸지만 차세대 제품에서는 승기를 가져오겠다는 의지다.
이를 위해 파운드리의 턴키 전략도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 부사장은 "HBM4는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복수 고객사와 커스텀(맞춤형) HBM 사업화를 준비하고 있으며, 고객의 요구사항을 만족하기 위해 제조 관련 파운드리 파트너 선정은 고객 요구를 우선으로 해 외부·내부 관계없이 유연하게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가 TSMC와 손잡고 HBM4를 개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자사 파운드리 공정을 고객사에 강요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고객사가 원한다면 TSMC 공정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놨다.
SK하이닉스는 5세대 HBM인 HBM3E까지는 자체 D램 공정으로 베이스 다이를 만들었지만 HBM4부터는 TSMC가 보유한 로직 선단 공정을 활용할 계획이다.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삼각동맹으로 독주 체제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삼성 파운드리의 턴키 전략도 일부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 TSMC, 인텔과 2나노 경쟁을 앞두고 있는 삼성 파운드리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 첨단 패키징, 테스트 공정간 시너지를 앞세워 빅테크 수주전에 나서겠다는 전략이었는데, 회사가 메모리 경쟁력 강화를 우선 과제로 선택하면서 턴키 전략이 뒤로 밀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설투자도 줄일 예정이다. 삼성전자 DS 부문은 올해 47조 9000억 원의 시설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메모리 사업부는 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에 따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파운드리는 투자 축소를 공식화했다. 김 부사장은 "파운드리는 시황 및 투자 효율성을 고려해 기존 라인의 전환 활용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고 밝혔다.
hanant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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