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실적이 반도체 시장에 던진 공포…"AI 빼면 어둡다, 훨씬"

ASML 3분기 장비수주 예상치 큰폭 하회…삼성·인텔 파운드리 적자로 투자 축소
내년 매출 전망치도 하향…"AI 외 부문서 반도체 회복 예상보다 더뎌"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의 로고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의 3분기 수주량이 곤두박칠치면서 반도체 시장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와 인텔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 지연이 수주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ASML이 내년 매출 전망까지 하향함에 따라 반도체 시장의 중장기 성장 가능성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

ASML은 15일(현지시간) 3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애초 3분기 실적은 16일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관련 자료가 사전에 유출되면서 실적을 하루 먼저 공개했다.

ASML의 3분기 매출은 75억 유로로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하지만 장비 수주금액이 26억 2000만 유로로 시장 예상치(56억 유로)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ASML은 내년 매출 전망도 300억~350억 유로로 기존(300억~400억 유로)보다 하향 조정했다.

ASML은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유일한 업체로 반도체 업계 '슈퍼 을(乙)'로 불린다. EUV 장비 가격은 대당 2000억~3000억 원 수준이며 연간 생산량은 50대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3분기 ASML 장비 수주금액 중 절반이 넘는 14억 유로가 EUV 장비다.

수주 급감의 가장 큰 원인은 삼성·인텔의 파운드리 투자 지연과 중국 수출 규제로 분석된다.

크리스토퍼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경쟁적인 파운드리 역학 관계로 인해 특정 고객의 증설 속도가 느려지면서 EUV 수요 타이밍도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파운드리에서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인텔과 삼성은 국내외 투자를 보류·연기하고 있다. 인텔은 독일 공장 건설을 일시 중단했으며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 가동 시기를 연기한 상태다.

미국 정부의 대중 수출 규제도 타격이었다. ASML은 지난 2분기 실적 발표 당시 매출의 49%가 중국에서 발생한다고 밝힌 바 있다.

ASML이 3분기 매출 자체는 양호한 만큼 수주량 감소와 관련한 표면적인 원인만 놓고 보면 반도체 시장에 큰 영향은 없어 보인다. 다만 AI 부문을 제외한 범용 반도체 시장의 부진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 중장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ASML이 내년 매출 전망을 낮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분석된다.

푸케 CEO는 "AI의 강력한 발전과 성장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그 외 부문은 회복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회복이 더디다"며 "이런 현상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메모리의 경우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등 AI 관련 수요를 위한 기술 전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설비용량 증가가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통신 또한 "AI를 제외한 자동차 등 나머지 산업에서는 쌓여있는 재고로 인해 반도체 시장이 침체에 빠져 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도 지출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세도 둔화하고 있다. AI향 제품 가격은 강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범용 제품은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3분기 8~13% 상승한 범용 D램 가격은 4분기 정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낸드의 경우 4분기 가격이 3~8%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렌드포스는 기업용 SSD 성장세도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hanant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