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산업장관들 "韓 반도체, 몰락한 도시바·인텔처럼 될 수도"

한경협, 이윤호·윤상직·성윤모·이창양·이종호 전 장관 초청 특별대담
"中반도체, 삼성·SK 턱밑까지 추격…산·학·연·정 전방위 지원 절실"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14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역대 산업부장관 초청 특별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창양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 성윤모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종호 전 과학기술통신부 장관. (한경협 제공) 2024.10.14/뉴스1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역대 산업장관들은 기로에 선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과거 세계 점유율 1위 명성을 떨쳤다가 몰락한 일본 도시바, 미국 인텔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과감한 혁신과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14일 한목소리를 냈다.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 윤상직·성윤모·이창양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한국경제인협회가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개최한 '역대 산업부 장관 초청 특별 대담'에 참석했다. 이종호 전 과학기술통신부 장관도 특별 초청을 받아 자리했다.

도시바는 2000년대 초까지 세계 1위 낸드플래시 제조사로 일본 테크산업의 상징이었지만 지난해 12월 출범 74년 만에 증권시장에서 퇴장했다. 인텔은 2016년 CPU(중앙처리장치) 시장 점유율 82.5%를 쥔 세계 최대 종합 반도체 기업이었지만, 올 2분기에는 16억1000만 달러 순손실을 기록했다. 현재는 파운드리 사업 분사를 추진 중이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위험의 징조를 사전에 알고 대비할 수 있었지만, 그 영향을 간과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회색 코뿔소'의 비유를 언급하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국내 반도체 생산능력이 중국과 대만에 갈수록 뒤처질 수밖에 없고, 인공지능(AI) 등 첨단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 싸움에서도 패배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역대 산업 장관들은 한국과 달리 미국·중국·일본 정부는 반도체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쏟아 자국 기업과 현지 투자 기업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점을 소개하며 국내 대응이 한참 뒤졌다고 지적했다.

성윤모 전 장관은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대해 타 국가보다 빠른 속도로 양질의 다양한 지원을 전폭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며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육성은 물론 일본 수출규제(화이트리스트 조치) 대응을 통해 마련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해 흔들리지 않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창양 전 장관은 "기업이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경영 판단 및 기민한 대응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효과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특히 민간이 할 수 없는 인프라(전력·용수)와 인력 확보에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윤상직 전 장관은 "2030년에는 현재 발전 용량(144GW)의 50% 이상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라며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지체되고 있는 송전망 건설을 조속히 완공하고, 신규 원전건설과 차세대 SMR(소형모듈원전) 조기 상용화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가 14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역대 산업부장관 초청 특별대담'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번 간담회에 참석한 역대 산업부 장관들은 한국이 반도체 강국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과감한 혁신과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이 시급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경협 제공) 2024.10.14/뉴스1

반도체 산업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윤호 전 장관은 "미국, 중국, 일본이 (자국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 지원을 결정한 것은 반도체가 단순한 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라며 "현대 군사 기술의 90% 이상이 반도체 기술에 의존하는 등 반도체 산업은 국가 안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했다.

특별초청 자격으로 대담에 나선 이종호 전 장관은 "산학연 협력을 통해 AI의 엄청난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저전력 반도체 기술 개발이 신속하고 실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대학과 기업의 연구개발을 위한 컴퓨팅 인프라 구축과 지원이 시급하며 AI 관련 기업 지원 펀드 조성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직 장관들은 한국이 현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차세대 기술 진입 한계와 중국 등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의 추격, 전력 수급 등 산적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면서 산·학·연·정 4각 협력이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 중 하나인 YMTC는 지난해 7월 3D 낸드플래시 7세대(232단) 양산에 성공,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턱밑까지 추격한 상황이다.

대담 주제 발표를 맡은 황성철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국내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더딘 발전과 메모리 분야 경쟁력 저하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장래에 불안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며 "국가적인 지원과 학계 및 산업계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고 했다.

전직 장관들은 특히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더딘 발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메모리 분야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술 혁신 가속화 △인프라 선제 확보 △실효성 있는 정부 지원이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기술적 한계 극복과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산·학·연·정 협력도 주문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