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공장 中에 복제했는데"…보석으로 풀려나 '허탈'

삼성전자·하이닉스 전 임원, 中으로 인력·기술 빼낸 혐의 기소
법원, 보석 허가 결정…산업계 "기술유출 처벌 강화해야"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이자, 국가 핵심기술인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를 중국으로 빼돌린 전 임원이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업계의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 경쟁력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산업 스파이에 대해 관대한 처분이 이어지면 기술 유출 재발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반도체 핵심기밀 中 유출한 스파이인데…법원은 보석 허가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10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에게 보석을 허가했다.

최씨는 삼성전자(005930)와 하이닉스(000660) 등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며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하고, 퇴직 후에는 싱가포르에 반도체 컨설팅 업체 '진 세미컨닥터'를 설립했다.

이후 2018년 대만 폭스콘으로부터 약 8조원을 투자받아 중국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도를 기반으로 한 '복제 공장'을 세우려고 시도했다.

다행히 시안에 공장을 세우려던 계획은 폭스콘의 투자 철회로 무산됐으나, 이후 최씨는 청두시로부터 4600억원을 투자받아 합작회사를 차리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도를 기반으로 시제품을 생산하는 '연구 개발동'을 설립했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에 따르면 청두시 '삼성전자 복제 공장'에서는 20나노급 D램 반도체가 생산되고 있다. 더욱이 단순 공장 설계도만 유출한 것이 아니라, 20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공정 기술들을 통째로 빼내 간 것으로 파악됐다.

최씨는 또 불법 헤드헌팅사를 통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엔지니어 200여명을 스카우트 했다. 이는 산업 인재 유출로 역대 최대 규모다.

최씨의 기술 및 인재 유출 범죄는 금전적으로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할 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와 경쟁력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중대한 범죄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NISC)가 2003년부터 올해 7월까지 20년간 집계한 산업 기술 해외 유출은 총 552건에 달하며, 피해 규모는 100조원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최씨가 유출한 20나노급 D램 기술은 도달하기까지 쉽지 않지만, 한 번 도달하고 나면 상위 단계로의 발전이 쉬워 업계에서는 '게임 체인저'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13, 14나노급 D램 기술도 넘볼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에도 타격을 줄 수 있는 기술이다.

반도체 웨이퍼.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솜방망이 처벌 끝내야 기술 유출 사라진다"

문제는 기술 유출 범죄가 야기하는 피해가 매우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법에 명시된 형량에 비해 실제 선고되는 양형은 매우 낮다는 점이다.

국내 기술 유출 양형 기준은 기본 징역 8개월에서 2년이며, 가중처벌을 해도 최대 4년이다. 국외 기술 유출은 기본 징역 1년~3년6개월에 가중 처벌을 해도 최대 6년에 불과하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명시된 최고형량인 국내 10년·국외 15년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실제 2019~2022년 사이 선고된 기술 유출 사건 중 실형은 약 10%에 불과하며, 지난해 선고된 영업비밀 해외 유출 범죄의 형량은 평균 14.9개월에 불과했다.

점차 산업기술 유출 범행의 수법이 교묘하게 진화하면서 해외 각국이 선제적인 예방을 위해 처벌을 강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처벌 수위가 '솜방망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미국은 일명 '경제 스파이법(Economic Espionage Act in USA)'을 통해 국가 전략 기술을 해외로 유출시킨 범죄자를 간첩죄 수준으로 가중 처벌, 예방 효과를 높이고 있다. 대만도 핵심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경제 간첩죄'를 적용하고 있으며, 일본도 관련법을 제정해 막대한 액수를 손해배상 청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씨 사례처럼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경우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한다"며 "최씨가 피의자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보석으로 풀려난 것은 아직 우리나라가 기술 유출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한편 산업기술 유출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이례적으로 유관 부처·기관 회의를 소집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범정부 기술유출 합동 대응단'을 출범하고, 향후 △국제공조 △법집행 △정책·제도 등 3개 차원에서 분과를 꾸려 각 분과 총괄기관을 중심으로 기관 간 협업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검찰청과 특허청도 '기술유출 피해액 산정 가치평가 도입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피해 금액 산정 기준 △지식재산 가치평가 △해외 사례 등에 관해 논의에 나섰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