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한 가족 임원조차"…삼성전자, 끊이지 않는 기술유출 '속앓이'
월평균 1.6건 산업기밀 해외유출 적발…"中, 반도체·배터리 등 주력산업 겨냥"
"산업스파이에 국가·기업 대규모 피해…솜방망이 처벌 강화해야"
- 신건웅 기자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삼성전자(005930) 반도체(DS) 부문에서 18년간 근무 후 SK하이닉스(000660)에서 부사장까지 지낸 A씨는 영업 기밀이자 국가핵심기술인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를 빼돌렸다. 중국으로부터 받은 투자로 삼성전자 시안공장과 1.5㎞ 거리에 '복제판 공장'을 지을 계획이었다. 반도체 핵심인력 200여명도 고액연봉으로 영입했다. 다행히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첩보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지난 2월 A씨를 잡았지만, 삼성전자 피해액은 최소 3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또 다른 직원인 B씨도 지난해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로 이직을 준비하면서 파운드리 3나노 공정 관련 기밀을 유출했다. 결국 붙잡혔지만 삼성전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파운드리 시장의 핵심 기술이 추격자인 인텔에 넘어갈 뻔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분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리 기업들의 기술 유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중국과 글로벌 기업들이 억대 연봉 등을 앞세워 산업 스파이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기술이 외국으로 소리소문 없이 유출될 수 있다. 기업들은 피해를 막기 위해 자체 보안 강화와 더불어 산업 스파이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일 것을 요구했다.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총 97건의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이 적발됐다. 적발된 것만 월평균 1.6건꼴이다.
올 들어서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2~5월 벌인 경제안보 위해범죄 단속 결과 77명(35건)이 적발되는 등 기술 유출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자율주행차 등 주력산업이 대표 기술 유출 대상이다.
특히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 기술 전쟁에서 미국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중국이 해외 과학 기술 인재 영입에 속도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중국에 개설한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 인력을 아예 캐나다로 옮기고 있다. 중국 측이 연구원을 빼가려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국내 기업들도 보안 강화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개인의 행동을 제한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모든 구성원의 행동을 다 제한하는 것은 무리"라고 토로했다.
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이 가벼운 점도 제2, 제3의 산업 스파이를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은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 대해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으나 실제 처벌은 미흡하다.
기술 보호 관련 대표 법률인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에서는 국가핵심기술주의 해외유출 시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을 병과하고, 그 외 산업기술을 해외 유출한 경우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제1심 형사공판 사건(총 33건) 중 재산형과 실형은 각각 2건(6.1%)에 그쳤다. 무죄가 60.6%고, 집행유예도 27.2%에 달했다.
반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과 최대 경쟁관계에 있는 대만은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하면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유기징역과 대만달러 500만 위안 이상 1억 위안(약 4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미국의 경우 기술유출은 기본적으로 6등급의 범죄에 해당해 0∼18개월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지만, 피해액에 따라 최고 36등급까지 상향할 수 있다. 이 경우 188개월(15년 8개월)에서 최대 405개월(33년 9개월)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기업들은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8일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서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고, 국가 총력전"이라며 "핵심기술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유출을 방지하는 것 또한 긴요한 과제"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재조정할지 논의하기로 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첨단기술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산업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행위는 개별기업의 피해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훼손을 가져오는 중범죄"라며 "기술 유출 시 적용되는 양형기준을 상향조정하고 감경요소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k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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