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소녀가 온다"…라니냐에 다시 떠는 기후플레이션
엘니뇨에 올해 커피·초콜릿 가격↑…기후변화로 영향 더욱 커져
라니냐 시기엔 곡물 가격 상승 전망…"내년 하반기 원가 부담 가중"
- 이형진 기자
(서울=뉴스1) 이형진 기자 = 식품업계가 다시 한번 기후변화로 인한 가격 인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는 엘니뇨(El Niño) 현상으로 커피와 초콜릿 가격이 폭등한 데 이어, 내년에는 라니냐(La Niña)로 전환되면서 주요 곡물 가격이 들썩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3일 인베스팅 닷컴에 따르면 런던 상품거래소(ICE)에서 거래되는 로부스타 커피 선물 가격은 지난 9일 기준 톤당 4382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1년 전 2000달러대와 비교해 2배가량 상승한 수준이다. 특히 지난 9월에는 톤당 5000달러선까지 치솟기도 했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코코아 선물 가격도 올해 고공행진 중이다. 미국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코코아 가격은 지난해 11월 톤당 4000달러선에서 올해 9일 기준 7117달러까지 올랐다. 상반기 중에는 사상 처음으로 1만 달러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소비자 부담도 커졌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올해만 두차례 가격을 인상했고, 커피믹스 1위 업체 동서식품도 제품 가격을 올렸다. 카카오 원두를 직접 수입해 초콜릿을 생산하는 롯데웰푸드 역시 지난 6월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이같은 가격 상승의 원인은 엘니뇨 현상이 꼽힌다. 스페인어로 '소년'을 뜻하는 엘니뇨는 무역풍이 약해지면서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이다. 대기의 변화로 주요 커피 산지인 베트남에는 폭염이, 코코아 산지 서아프리카에선 가뭄이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기후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문제는 내년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가을이 지나면 겨울부터는 엘니뇨의 반대 현상인 라니냐(스페인어로 소녀)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라니냐는 무역풍이 강해지면서 동남아시아 지역엔 홍수가, 반대로 남미 지역에선 가뭄을 일으킨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7년 주기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지구 온난화와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기후변화로 영향의 강도는 더욱 커졌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엘니뇨 시기에는 코코아, 커피, 원당 등의 가격이 상승하는 반면, 라니냐 시기에는 옥수수, 소맥, 대두 등 주요 곡물 가격이 오르는 경향을 보인다. 옥수수와 대두 가격 상승은 축산 농가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소맥은 라면·제과·제빵 등의 제품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업계는 당장 걱정은 없다는 분위기다. 미국 내 곡물 작황이 풍부해 공급이 크게 늘었고, 사료 등 곡물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 돼지 사육 두수도 상승 폭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하반기 이후부터는 영향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조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현재의 기후 위기가 지속된다면 곡물 가격은 내년 상반기 본격적인 상승세를 보일 수 있다. 곡물의 투입 시기가 매입에 6개월 정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음식료 기업들의 원가 부담은 하반기부터 가중될 것"이라며 "곡물 가격 상승은 기업들에게 가격 인상의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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