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충전기 탓 불날 뻔, 발 안들어가는 테무 신발…"앱 삭제했다"
[알리·테무發 경제전쟁]⑰저질상품·발암물질…소비자들 피해 사례 폭주
상식밖 초저가의 결과…소비자단체 "합리적 소비 위한 공론장 만들어야"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는데?"
지난 2월 직장인 양 모 씨(50)는 집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던 중 고무 타는 냄새를 맡았다. 혹시나 해서 사흘 전 중국 쇼핑몰에서 산 다용도 충전기를 만져보자 열기가 느껴졌다. 이미 과열된 충전기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양 씨는 "불이 났을 수 있는 상황인데 집에 사람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나"며 "그래도 늦지 않게 알아차려 다행"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양 씨가 구매한 제품은 C타입 코드 두 개와 USB 코드 한 개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제품이다. 가격은 할인받아 9000원대. 양 씨는 당시 제품 후기를 올리고 반품과 환불 절차에 대해 문의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제품을 며칠 더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버렸다. 고작 만 원짜리 물건 때문에 싸우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2019년부터 알리익스프레스(알리)를 사용한 양 씨는 그날 이후 앱을 삭제했다. 중국 제품에 대한 '불신'이 '확신'이 됐다. 하지만 해당 제품은 여전히 알리 앱에서 판매되고 있다. 지난달까지 올라온 제품 후기에는 양 씨처럼 과열을 경험하거나, 충전이 아예 안 된다는 글도 보였다.
◇ 품질은 '기대 이하'…가성비에 가려진 소비자 불만
중국 e커머스를 통해 구입한 제품으로 인해 불편을 겪은 국내 소비자는 양 씨뿐만이 아니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3월 중국 e커머스(알리·테무·쉬인)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10명 중 8명(80.9%)이 배송 지연, 제품 불량 등의 불편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실제 알리‧테무‧쉬인에서 예상보다 더 낮은 품질을 경험한 국내 소비자들은 다양한 SNS 창구를 통해 불만을 성토하고 있었다. 다만 워낙 초저가 상품에 대한 소비자 기대치가 낮은 탓에 별점이 낮은 후기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서울에서 유통업을 하는 이성욱 씨(52)는 지난 2월 테무에서 후기가 좋은 상품 위주로 제품을 구매했지만 낮은 품질에 크게 실망했다. 구매 전 앱에 올라온 사진은 멀쩡해 보였지만 저렴한 신발을 고른 게 패착이었다.
구매한 여러 제품 중 어린이 신발은 '신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발등 쪽 가죽은 얇아서 밑으로 쳐지고 운동화 끈과 고정되는 부분이 없어서 안쪽으로 말려들어 갔다. 바닥과 몸체는 통으로 찍어낸 고무 신발 같은 느낌이었다.
이 씨는 "모양은 예쁜데 만져보면 신발이 맞나 싶을 정도"라며 "신발 모양은 유지하고 있지만 장난감에 가죽 씌워놓은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허리통이 큰 아버지를 위해 산 가죽 벨트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힘없는 가죽이 흐물거려 버클을 채울 때 허리띠가 계속 처지고 내려갔다.
특유의 '역한 냄새'도 빠지지 않아 사용이 꺼려졌다. 탈취제를 뿌리고 베란다에 3일을 말렸지만 냄새는 여전했다. 그는 "몸에 닿는 상품은 앞으로도 사지 않을 것 같다"며 "눈으로 보고 샀으면 절대 사지 않을 물품들"이라고 말했다.
알리와 테무에서 제품을 구매한 지 1년째라는 주부 이아라 씨(39·여)도 비슷한 경험을 한 후로 사용자 리뷰를 특히 더 꼼꼼히 읽어본다고 했다.
네이버 블로그에 테무 제품 후기를 남긴 신 모 씨(26)도 최근 테무에서 가방을 구매했다가 출근길에 낭패를 봤다. 박음질이 약해 어깨끈이 끊어진 것이다. 의류도 4가지 제품 중에 치수가 워낙 달라 그중 하나만 성공했다.
신 씨는 "기존 알리의 경우도 상세 페이지와 다른 제품을 보내거나 마진을 위해 엄청나게 안 좋은 제품을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테무도 이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했다"면서도 "식품을 사는 것도 아닌데 가격변동이 너무 심해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데도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도 문제"라고 토로했다.
◇ 소비자단체 "장기적 관점으로 소비해야"
일부 소비자단체는 국내 소비자들이 지금이라도 합리적 소비를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엄명숙 서울소비자시민모임 대표는 "소비자들도 무조건 싼 가격이 아니라 같은 퀄리티의 제품이면 어느 정도 선이 적당한 가격인지 따지는 것이 합리적 소비라는 인식을 키워야 할 것 같다"며 "이번 논쟁을 계기로 중국 제품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소비자 불만 사항을 토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알리 등 중국 플랫폼에 발암물질이 검출되면서 단속을 더 강화해야 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앞서 서울시도 4월 넷째 주부터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서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가 많은 품목을 안전성 검사하고 그 결과를 매달 발표하겠다고 했다. 첫 결과 발표로 중국 온라인 직구 쇼핑 플랫폼 테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하는 어린이용 제품 22개 중 11개 제품이 안전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25일 발표된 두번째 발표에서도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발암물질이 검출됐다. 어린이용 차량용 햇빛 가리개에서도 프탈레이트계 가소제(DEHP, DBP)가 기준치의 약 324배 초과 검출됐고, 제품 일부 부분에서 납 함유량이 기준치를 초과했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불임을 유발하는 등 생식 독성이 있는 유해 물질이다. 특히 DEHP는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인체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돼 있다.
인천세관 조사에서도 알리와 테무에 올라온 귀걸이, 반지, 목걸이, 발찌 등 장신구 제품 404개 중 96개에서 기준치의 700배에 이르는 카드뮴과 납이 검출됐다. 모두 신장계나 소화계 질환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이다.
녹색소비자연합 부산지부 관계자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재라는 환경호르몬이 플라스틱에 많이 들어가는데 이런 게 의류에도 들어있다"며 "인증을 안 받은 아이들 옷에 포함돼 있는데 언젠가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youmj@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로 불리는 중국 e커머스가 주도하는 '차이나 덤핑'이 한국 경제를 흔들고 있다. 품질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 염가 공세에 소비자는 무방비로 노출됐고 소상공인은 생존 위협에 처했다. 산업 전반에 걸쳐 '경제전쟁'으로 번질 것이란 위기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가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신속하고 엄중한 대응은 물론 개인의 인식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C커머스의 실태와 문제점, 대응 방안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