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상품 낱개당 더 비싸다…"싼 물건 찾는 심리 이용"
[OO플레이션]번들로 살수록 가격 비싸져
"배송비·쿠폰 고려하면 더 싸" vs "눈속임일 뿐"
- 한지명 기자
(서울=뉴스1) 한지명 기자 = 직장인 곽모씨(35)는 최근 인터넷 쇼핑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즉석밥을 1개 살 때보다 묶음상품 구매 시 낱개당 가격이 더욱 비싸진 것. 김씨는 "묶어서 살수록 가격이 싼 줄 알았는데 비싸지는 것은 너무한 것 같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눈속임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21일 식품·외식업계에 따르면 물가가 고공 행진하기 시작한 꼼수플레이션이 다시 유행이다. 제품 가격을 그대로 두면서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제품값과 용량을 유지한 채 원재료를 줄이는 '스킴플레이션'(skimflation)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더 많은 용량과 개수의 번들상품을 구매할수록 낱개당 가격을 비싸게 받는 이른바 '번들플레이션'(bundle+inflation)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주요 제조사들의 네이버 브랜드스토어(직영몰)에서 번들플레이션이 목격되고 있다.
CJ제일제당(097950) 네이버 네이버 브랜드스토어에서 파는 햇반·비비고 육개장·비비고 만두·사골곰탕 등 주요 즉석식품을 분석한 결과 묶음상품으로 살수록 낱개당 가격이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햇반(210g) 묶음상품의 경우 12개 묶음 1만1000원, 18개 1만8450원, 24개 2만4400원이다. 언뜻 보면 차이점이 없어 보이지만 개당 가격으로 봤을 때 925원, 1025원, 1016원으로 많이 사는 것이 비싼 가격 구조다.
비비고 왕교자(1.05kg) 제품은 낱개 가격이 8980원이지만, 2개(낱개당 1만480원)와 6개(낱개당 9981원) 등 번들 상품 가격이 최대 1500원 더 비쌌다. 낱개 제품을 각각 2개 사는 것이 오히려 2개 묶음 상품을 사는 것보다 3000원 저렴한 셈이다.
존슨앤존슨(J&J)의 '아비노 데일리 모이스춰라이징 바디워시'(532ml) 상품은 2개 묶음상품을 구매할 시 개당 가격은 1만1830원이다. 그러나 3개 묶음상품을 사면 개당 가격이 1만2300원으로 4%가량 높았다.
브랜드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자사몰에서의 가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농심몰 '사리곰탕’(소컵)도 18개 번들 제품의 낱개 가격(911원)이 12개입(908원)보다 비쌌다.
CJ제일제당 공식몰 'CJ더마켓'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햇반 작은공기(130g)의 경우 6개 번들의 낱개 가격은 750원이지만, 36개들이 가격은 840원이었다. 발아현미밥(210g)역시 낱개(1380원) 가격이 8개 번들 가격(1498원)보다 저렴했다.
CJ제일제당 측은 번들플레이션이 배송비와 쿠폰값 등을 고려하지 않은 데서 나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과적으로 계산을 마치면 묶음 상품이 더 저렴하다는 취지다.
아울러 온라인 가격 정책인 최저가 연동제에 따라 가격이 실시간으로 변동한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CJ제일제당을 비롯한 대다수 제조사는 온라인 최저가에 따라 가격이 변하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작은 번들 제품에 큰 번들 제품보다 높은 할인율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네이버 쇼핑에서 제품을 검색하면 최저가 순으로 제품이 나온다. 온라인의 경우 최저가에 맞춰 자동으로 가격이 변동되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어 다른 셀러들이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느냐에 따라 자동적으로 반응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이 가격을 적극 공지하지 않는 경우에는 소비자들이 이를 금세 알아차리기 어려워 일각에서는 번들플레이션이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시대에 소비자들이 싼 물건을 찾는 심리를 기업이 이용하는 것"이라며 "소비자의 착각을 유도해서 결국 비싼 가격에 팔아 기업이 이윤을 올리려는 기망 행위"라고 말했다.
hj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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