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링크플레이션도 제동 걸리나…기업들 "지침 나오면 따를 수밖에"
정부, 실태조사 후 대처 방안 마련하기로
전문가 "지나친 개입, 부작용만 커져"
- 이상학 기자
(서울=뉴스1) 이상학 기자 = 최근 식품 제품의 가격은 유지하면서 용량을 축소하는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정부가 실태조사에 나섰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정부가 가격 인상에 이어 슈링크플레이션에도 제동을 걸었다. 실태조사가 끝나는 대로 대처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기업들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슈링크플레이션을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해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식품업체들이 기존 제품의 용량을 줄이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CJ제일제당(097950)은 이달 초부터 '숯불향 바베큐'의 중량을 280g에서 230g으로 낮췄다. CJ제일제당 측은 OEM 변경 과정에서 제품의 스펙이 달라진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동원F&B(049770)는 '양반김' 2종의 중량을 기존 5g에서 4.5g으로 , '동원참치 라이트스탠다드'를 100g에서 90g으로 줄였다. 동원F&B 측은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인해 기존 5g 제품을 단종하고 4.5g 제품으로 출시했다"고 했다. 원가를 감내하지 못해 가격을 올리는 대신 용량을 줄였다는 것이다.
해태제과(101530)도 7월 '고향만두' 2종의 중량을 최대 16% 줄였다. '고향김치만두는' 450g에서 378g으로 16%, '고향만두'는 415g에서 378g으로 8.9% 줄었다. 풀무원(017810)의 경우 지난 4월 핫도그 제품의 개수를 1봉지당 5개(500g)에서 4개(400g)로 줄인 것이 뒤늦게 드러나 뭇매를 맞고 있다.
대다수의 기업은 정부의 지침이 나오면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어떤 형태의 가이드라인이 나오더라도 거절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A 식품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라면값을 내리라고 해서 내렸고, 원윳값을 올려놓고 우유 가격은 올리지 말라고 해서 인상 폭이 굉장히 낮아지는 것을 봤다"며 "정부가 슈링크플레이션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B 업체 관계자는 "제품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올라가는데 제품을 파는 비용은 유지하라고 해서 용량을 줄였더니 이젠 용량도 줄이지 말라고 한다. 손해 보고 장사하라는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강경하게 나오는데 어길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되겠냐"고 토로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개별 품목에 개입하는 건 장기적으로 물가 안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슈링크플레이션 역시 정부의 지나친 가격 통제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품목별로 간섭하려 하니까 기업 입장에서 대응전략으로 용량을 줄이는 것"이라며 "정부는 석유나 밀가루 등 원자재 가격 안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격 결정은 고도의 기업 활동인데 룰을 정해 놓으려 하면 부작용만 커진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08년 고유가와 곡물가격 급등으로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MB물가지수'를 도입했다. 밀가루·라면·지하철·버스·학원비 등 생활필수품 52개를 따로 선정해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특별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정책 시행 뒤 3년간 MB물가지수는 20.42%나 올라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12%)을 훨씬 앞질렀다. 정부가 가격을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반발력도 커져 한 순간에 폭등세로 돌변하는 것이 물가의 생리다. 결국 정부가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해 부작용을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shakiro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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