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쓰레기 주우면 친환경 제품 드려요"…'비치코밍' 해보니

롯데백화점, 제주 월정리 해수욕장서 '비치코밍 프로젝트'
참여자 85% MZ세대…"환경 보호도 쉽고 재밌게" 인식 변화

서울에서 온 가족 단위 관광객이 제주 구좌읍 월정리 해수욕장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모습. 참가자들은 한낮 더위가 34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에도 '비치코밍'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롯데쇼핑 제공)ⓒ 뉴스1

(제주=뉴스1) 한지명 기자 = 이달 6일 오후 2시 제주 월정리 해수욕장에서는 하얀색 비닐봉지와 집게를 든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모래사장에 쓰레기가 보이면 잠시 멈춰 집게로 비닐봉지에 담기를 반복했다. '비치코밍'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비치코밍은 바닷가로 떠밀려온 표류물이나 쓰레기 등을 거두어 모으는 행위를 빗질에 비유한 표현이다.

롯데백화점은 환경재단과 6·7일 이틀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해수욕장에서 '비치코밍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롯데백화점 환경 캠페인 '리얼스'(RE:EARTH)의 일환이다.

해수욕장에 '리얼스(RE:EARTH) 마켓'을 열고 비치코밍에 필요한 봉투와 장갑, 집게 등 도구를 제공했다.

이날 한낮 기온 34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에도 행사 신청을 받는 부스 앞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6살 된 자녀와 방문한 김모 씨(40대)는 "서울에서 내려와 성산에서 한 달 살기 중인데 주변에서 행사 소식을 알려줘 아이와 함께 왔다"며 "해수욕장 주변으로 쓰레기가 정말 많다"고 말했다.

월정리해변 주위 1km 근방에서 나온 쓰레기. 가장 많은 쓰레기는 '담배꽁초'였다. 해변 모래 사이로 깨진 유리병 조각도 발견됐다. (롯데쇼핑 제공)ⓒ 뉴스1

이날 월정리해변을 1㎞ 걸으며 비치코밍에 참여했다. "상가 근처에 담배꽁초가 많다"는 한 시민의 귀띔에 해변 카페거리로 향했다. 가까이 가보니 생각보다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와 놀랐다. 주차장 주위에 버려진 담배꽁초만 수십 개에 달했다. 구석에 박힌 쓰레기를 발견할 때마다 '보물찾기'를 하는 듯했다. 비치코밍 시작 5분 만에 먹다 버린 캔, 빨대로 봉투가 절반가량 가득 찼다.

이번에는 바닷가로 이동했다. 모래 사이사이로 깨진 유리병이 보였다. '누가 밟기라도 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빠르게 비닐로 집어넣었다. 한참을 구부려 쓰레기를 줍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하지만 눈은 자동으로 땅에 버려진 쓰레기가 없나 살피고 있었다.

이날 비치코밍을 하면서 만난 봉사자들 얼굴에도 땀이 가득했다. 이들에게 "더운 날씨에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대부분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는 무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제주도민 참여도 이어졌다. 애월읍에 산다는 김모 씨(30대)는 "내가 사는 곳인데, 내가 청소해야 한다"고 웃어 보였다.

제주 애월읍에 사는 김모(30대)씨가 딸과 함께 '비치코밍' 활동으로 모은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 김씨에게 행사 참여 이유를 묻자 "(제주도는) 내가 사는 곳인데, 내가 청소해야 한다"고 답했다.ⓒ 뉴스1 한지명 기자

롯데쇼핑에 따르면 비치코밍 사전 접수자들의 85%가 2030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라고 했다. 환경위기와 동물보호 등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가치소비를 즐기고자 하는 '미닝아웃' 문화가 확산하면서 젊은 세대들 참여가 높다.

이날 해변에서 만난 2030대 커플도 행사 신청자 중 한 명이다. 강원도 양양에서 서핑을 즐긴다는 이모(30)씨는 비치코밍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는 "양양에서 서핑을 한 뒤 쓰레기 3개를 주워오는 '테이크3'(Take 3)라는 캠페인에 참여했다"며 "바다를 사랑하기 때문에 전혀 힘들지 않다. 이것도 추억"이라고 말했다.

혼자 헤드셋을 끼고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20대 여성을 만났다. 박 씨(26) 역시 한강에서 줍깅(쓰레기 줍기+조깅) 행사에 참여해본 적이 있고 등산하며 플로깅을 한다고 했다. 박 씨는 "참여할 때마다 쓰레기가 많아서 기분이 안 좋다"며 "누군가는 계속 버리니까, 주울 사람이 생겨나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행사 30분 만에 봉지를 가득 채웠다. 쓰레기양에 따라 포인트로 환원하면 '리얼스 마켓'에서 '제로웨이스트' 물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오늘 주운 쓰레기 한 봉지가 '유기농 면 손수건'으로 교환됐다. 수건을 쓸 때마다 땀 흘리며 쓰레기를 주웠던 '비치코밍' 경험과 환경보호에 대한 책임감을 떠올릴 것 같았다.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오면 포인트로 전환해 '리얼스 마켓'에서 제로웨이트스 물품을 받을 수 있었다. 물건을 구매하는 공간이라는 롯데백화점의 업태를 CSR 활동에도 적용했다.(롯데쇼핑 제공)ⓒ 뉴스1

환경을 생각하며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이 예전과는 달라지고 있다. '얼마나'보다 '어떻게'에 초점을 둔다.

롯데백화점도 이번 캠페인을 단순한 환경보호가 아닌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환경보호'에 중점을 뒀다. 환경 보호는 어려운 게 아니라 일상에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넓히는 것이 '리얼스 마켓' 목적이다.

윤재원 롯데백화점 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문 ESG 팀장은 "물건을 구매하는 공간이라는 업태를 CSR 활동에도 적용했다"며 "돈이 아니라 쓰레기로 물건을 구매하는 리얼스 마켓의 콘셉트를 내부에서도 흥미롭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이 참여함으로써 완성되는 활동이기에 고객들이 이번 비치코밍으로 환경에 대해 소중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롯데쇼핑은 이달 13일, 14일 양일간 강원도 양양의 '중광정 해수욕장'에 리얼스 마켓을 설치해 비치코밍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향후 도시에서 쓰레기를 줍는 '시티 플로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hj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