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문알로에 회장, 교사→주부→대리점주→회장…"무서운 게 없었다 엄마라서"
최연매 회장 인터뷰…'건강식품 대부' 남편 갑작스런 작고 이후 찾아온 위기
지난해 매출 70% 급증..치매극복 건강기능식품 시장 도전
- 이승환 기자, 정혜민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정혜민 기자 = "사람이, 사람이 쓰러졌어요!"
최연매씨(여·당시 45세)는 119에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눈앞에는 고령의 남편이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구급차에 실려 가는 남편을 보며 최씨는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살아 있어야 해요, 제발!"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남편의 영정사진이 빈소에 놓여졌다. 남편은 '건강식품 업계 대부'라 불리던 김정문 회장. 추모객 발길이 끊기지 않았다. 김 회장의 사인은 심장 대동맥 파열이었다.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일까. 최씨는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씨의 그때 기억은 불분명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맞아요, 남편과 사별 후 저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교사→주부→대리점주→회장…"죽을 각오로 했다"
건강식품 업체 김정문알로에 최연매 회장(이하 최 회장)의 말이다. 2005년 12월12일, '창업주' 김정문 회장과 사별하던 날을 그는 이처럼 떠올렸다. 김 회장 타계 후 최 회장은 경영권을 이어받아 회사를 이끌었다.
'김정문 회장의 아내'에서 '김정문알로에 회장'으로 극적으로 변신했던 그는 "어지간한 일에 충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이제는 내공이 쌓였다"고 털어놨다. 지난 18일 오후 2시쯤 서초구 서초동 소재 김정문알로에 본사 회의실에서 최 회장과 마주 앉았다.
"그 충격을 어떻게 버티었냐고요? '자식 키운 힘'으로 버티었죠. 자식을 낳고 죽을 각오로 키워보면 세상 무서운 게 없어요. 믿고 의지했던 남편은 떠났지만, 한 번 죽을 각오로 경영을 해보자고 다짐했어요."
최 회장의 경영 스토리를 이해하려면 그의 '과거'부터 살펴봐야 한다. 그는 애초 사업과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1985년 청주사범대학교(현 서원대학교)를 졸업한 최 회장은 청주의 한 중학교 교사로 약 2년간 일했다.
이후 '전업 주부로 자식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주부 경력만 7~8년 된다. 그러다가 개인 사정으로 홀로 아들과 딸을 키우게 됐다. 최 회장은 1991년 청주 지역에서 김정문알로에 판매 대리점을 운영했다.
그의 모성(母性)은 '버티는 힘'이 됐다. 남다른 교육열과 자식 사랑으로 무장한 '아줌파 파워'는 도드라진 결과물을 냈다. 최 회장은 "외투 주머니에 현금 100만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벌이가 좋았다"며 "정말 악착 같이 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출산을 기피한다고 하죠? 세상이 워낙 각박하니 그럴 만도 하겠죠. 그런데 자식을 낳고 보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모성'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자아죠. 희안한 일이에요. 모성이 생기면 세상 두려운 게 없어져요."
◇김정문 회장과 첫 만남…갑작스런 이별후 경영전면에
당시 김정문 회장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견디고 있었다.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김 회장은 아내와 2살배기 아들을 잃었다. 최 회장과 김 회장이 인연을 맺은 것은 그 무렵이다. 김 회장은 1996년 지역 매장 관리·직원 교육차 청주를 찾았다. 김정문알로에 청주지사장이었던 최 회장이 그를 맞았다. 김 회장은 이미 건강식품 업계의 스타였다. 생전 TV에 1000번 넘게 출연할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
"실제로 만나본 김 회장은 점잖기는 했지만 남자로서 매력은 좀 없었어요.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그이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였어요. 영화광이라고 할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고 관련 지식이 해박했어요. 특히 '인권' 다룬 영화에 조예가 깊었고 그런 영화를 제게 자주 소개해줬어요. 마음이 참 따듯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따듯한 사람."
1997년 4월 두 사람은 결혼했다. 김 회장은 70세였고 최 회장은 37세였다. 33살 나이 차를 극복한 '로맨스'였다. 행복했던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 회장은 자주 아팠고, 최 회장은 그를 보살펴야 했다.
2003년부터 최 회장은 김 회장을 도와 경영 일선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때 최 회장의 직함은 '부회장'이었다. 최 회장도 "보통내기가 아니다"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김 회장의 빈자리가 워낙 컸다. 김 회장은 '김정문알로에'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김 회장 별세 후 '김정문알로에가 곧 부도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김 회장은 회사 이윤의 90%가량을 소외 계층 지원에 쓰는 등 사회 환원 활동을 열심히 했다. 반면 미래 먹거리를 포함한 회사 사업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 경영 상황이 낙관적이지 못했다.
"회장님의 따듯한 경영 철학은 지금도 김정문알로에를 떠받치는 근간이에요. 그렇지만 회사가 마주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요. 회사가 존속돼야, 경영이 정상화돼야 좋은 일도 할 수 있어요. 이상과 현실 간 거리를 좁혀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저의 목표였어요."
◇"'엄마 리더십'으로 소통"…방문판매 한계 극복 위해 유통채널 다각화 '제2 도약'
2006년 회장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권위'를 세운 것이었다. 여성 경영자를 쉽게 보는 분위기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권위를 세우되 직원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직원들과 '독서 토론회'를 한 것은 소통과 팀워크 강화 차원이었다. 독서 토론으로 서로의 지향점과 철학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직원들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자는 게 취지다.
"회장 취임 후 한 임원은 저에게 노골적으로 인사 청탁을 했어요. 오죽 나를 무시했으면 그럴까 괘씸했죠. 그런 직원들은 곁에 두지 않고 '(좌천성) 인사 조치'를 했어요. 그렇다고 저는 엄한 리더가 아니었어요. 선대 회장님(김정문 회장)의 경우 아버지처럼 근엄해 직원들이 많이 어려워했어요. 저는 그와 달리 편하게 대화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엄마'가 되려고 했어요. 부회장 시절부터 말단 직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개인 근무실 문을 열어놓았어요."
흐트러진 조직 분위기는 안정됐다. 김정문알로에의 최대 무기인 방문판매 인력이 현장에서 성과를 냈다. 김 회장이 타계한 2005년 206억원에 그쳤던 매출은 이후 상승세를 탔다. 2006년 240억원, 2007년 266억원, 2008년 284억원으로 각각 16%, 11%, 7% 증가했다.
고비를 넘기는가 싶더니,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달라진 유통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온라인 유통 판매 채널이 활성화하는데, 오프라인 판매와 방문 판매를 고집했다. 지난 2016년 매출액이 172억원을 기록하는 등 100억원대로 떨어졌다.
다음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유통환경에 맞춰 홈쇼핑과 온라인 쇼핑몰, 일종의 편집숍인 헬스앤뷰티(H&B) 등에 진출했다. 판매채널을 다양화한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시장에서 성과로 이어졌다. 김정문알로에의 작년 매출은 320억원으로 전년 189억원보다 약 69% 증가했다.
"제품 자체도 혁신하려고 노력했어요. 김정문알로에는 주로 중년층이 선호했는데, 20·30대 젊은 여성들을 고객층으로 끌어들이려고 애를 썼지요. 큐어 인텐시브2X 크림 등 주력 상품군 신제품도 젊음 세대의 감각과 소비 흐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개발했어요. 신사업본부에는 35세 이상 직원의 출입을 아예 금지시켰죠.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 때 우려는 많았지만 저는 과감하게 밀어 붙였어요."
최 회장의 위기 극복 과정에서 잘 자란 '자식'이 큰 힘이 됐다. 아들인 권용성 신유통사업부 이사가 김정문알로에의 판매 채널 다양화 작업과 신사업을 주도했다.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권 이사는 롯데중앙연구소에 근무했던 '연구원' 출신이다. 꼼꼼하고 주도면밀한 일처리로 모친의 리더십을 '빼다 박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 이사를 포함한 젊은 친구들이 회사를 잘 키워줄 것이고, 저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업을 계획 중이에요. 요즘 사회적인 문제로 주목받는 '치매' 해결에 나서는 사업이에요. '고령자의 건강과 관심, 참여'를 권장하는 문화 브랜드 '김정문 올곧', 노인의 치매극복에 도움이 되는 건강식품 '올곧 가화인'을 곧 출시합니다. 회사가 관할 구역인 서초구 치매안심센터와 협업해 지역의 치매 대사로 활동하는 한편 전국망인 자사 대리점에서 개별적으로 노인을 초빙해 '치매 교실'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잘해줄 것"…'핏줄'만큼 뜨거운 2세경영
지난 28일 김정문알로에의 치매용 건강식품 출시 기념식에는 1500명이 몰릴 정도로 이목이 집중됐다. 치매 사업은 최 회장이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 것이다. 최 회장 또한 자식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버티는 삶'을 살았던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 엄마에 그 딸인 셈이다. 그 딸이 다시 낳은 아들이 김정문알로에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김정문알로에는 '핏줄'만큼 뜨겁고 극적인 '2세 경영'을 앞두고 있다.
"원래 어머니의 꿈은 외교관이었는데 형편이 워낙 좋지 않아서… 5남매를 위해 거리에서 청국장, 깻잎, 옷 등 닥치는 대로 팔았어요. 세상이 좋아지려니 어느덧 치매가 걸리셨죠. 제가 엄마가 돼서 아이를 낳아 세상을 한 번 바로 보니, 어머니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비로소 이해됐어요. 어머니에게 물려 받은 악착스러움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결국 김정문알로에의 미래를 모색할 수 있게 됐습니다."
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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