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서 뒤집어진 멀티플렉스 무료초대권 소송…영화계 '술렁'

재판부 "거래관계 성립 되지 않고, 손해발생도 근거 미약"
영화사봄, 명필름 등 상고 여부 고심, 힘없는 배급사는 눈치만

2015.01.16/뉴스1 ⓒ News1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 = CJ CGV, 롯데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상영사업자)가 영화 무료초대권을 발행하는 것에 대해 제작사들이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영화계가 술렁이고 있다.

영화는 제작사가 만들고 중간에 배급사가 끼어 상영사업자게 중개하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계약관계상 제작사와 상영사업자간에는 직접적인 거래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더욱이 재판부가 무료초대권이 제작사들에 손해를 미쳤는지 여부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判示)해 파장이 예상된다.

무료초대권 발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던 영화제작사들은 상고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 항소심서 뒤집어진 판결…제작사들 '당혹'

서울고등법원 민사18부(재판장 김인겸 부장판사)는 지난 9일 영화사봄, 명필름 등 19개 제작사들이 '무료초대권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멀티플렉스 상영사업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제작사들이 일부 승소한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제작사들은 2심에서 판결이 뒤집어지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사업자의 자사 및 계열사 배급 영화와 중소배급사 영화를 차별한 행위에 대해 징계를 가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영화사업자의 '갑질'을 질타하는 분위기 였기 때문이다.

영화사봄, 명필름, 아이엠픽쳐스 등 소송을 제기한 국내 19개 영화제작사들은 이르면 19일 상고 여부를 결정한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관계자는 "현재 소송당사자들이 법원의 판결 취지를 꼼꼼하게 살피고 법률적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제작사들이 의견을 모아 상고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영화사들은 지난 2011년 2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프리머스(2013년 CGV에 합병) 등 4개 멀티플렉스 사업자를 대상으로 무료초대권 발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처음 제기했다.

상영사업자들이 무료초대권을 발급해 정당하게 지불받아야 할 입장 수입이 줄어드는 손해를 입었기 때문에 이를 상영사들이 보상해 줘야 한다는 취지다.

'제작사-배급사-상영사업자'로 이어지는 영화산업 계약구조상 계약당사자 관계는 성립되지 않지만 무료초대권 발급에 따라 매출에 손해를 입는 직접적인 영향관계에 놓여 있다는 논리다.

영화사청어람이 '괴물'에 대해 2억6700여만원, 명필름이 '광식이 동생 광태'로 1억2000여만원, 아이엠픽쳐스가 '타짜'로 4억8600여만원을 청구하는 등 제작사들은 총 69개 작품에 31억 여원을 손해배상금액으로 청구했다.

소송 제기 후 2년 8개월이 지난 2013년 10월, 1심 재판부는 이들 제작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무료입장권 발행이 제작사와 상영사업자를 연결시켜주고 일정 수수료를 받는 배급사보다 제작사의 매출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상영사업자들이 이 같은 계약관계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제작자들의 의견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무료초대권을 발행해 손해를 입혔다고 봤다.

당시 법원은 CGV 34억원, 메가박스 8억원, 롯데시네마 3540만원 등 총 43억 여원을 제작사들에게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 2심 재판부 "제작사-상영사, 거래관계라 볼 수 없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1심을 완전히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우선 직접적인 거래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정거래법은 거래관계의 존재를 우선 전제로 하고 있으며,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거래의 상대방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불공정행위로 금지하고 있다"며 "거래관계가 없는 자에 대해서까지 그 적용범위를 확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작사와 상영사업자들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다"며 "단지 제작사들은 배급사 등과의 계약에 따라 배급사가 상영사업자들로부터 지급받게 되는 수익 중 일부를 지급받는 지위에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제작사와 협의 없이 무료입장권을 발행한 것도 불공정행위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영화제작 이후 상영에 관한 권한 및 수익증대를 위한 마케팅에 대한 결정 권한은 배급사에 있다"며 "제작사들이 계약 상대방인 배급사가 아닌 상영사업자들과 직접 무료입장권 발급 비율에 대해 별도 협의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판시했다.

지난 2008년 공정위가 무료초대권 발급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공정위는 영화배급사와 사전 협의없이 무료입장권을 발급한 행위를 지적한 것"이라며 제작사와는 무관한 일로 봤다.

무료초대권으로 해당 영화의 입장 수입이 감소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무료초대권이 없다면 초대권이 없는 동반 관객도 아예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인정하지 않았다.

저작권이 침해됐다는 제작사들 주장에 대해서는 "배급사와의 계약에서 유료 관객에 한해 상영을 허락했다고 단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나아가 영화 상영의 성격상 유료 관객에 한해 상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다고 볼 수도 없다"며 원고들 주장을 일축했다.

◇'힘없는' 배급사 나설 수 있을까

2심 재판부의 판결은 결국 상영사업자와 직접적인 계약관계에 있는 배급사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상영사업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배급사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영화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 배급사들의 경우 영화 개봉을 앞두고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기 위해 거의 구걸하다시피 하는데 문제제기가 가능이나 하겠느냐"며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힘없는 배급사들이 상영사업자에 어떤 문제제기도 쉽게 할 수 없는 을의 입장에 놓여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대형 멀티플렉스는 이번 판결을 환영하는 분위기이면서도 최근 갑질논란을 의식해 표현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CGV 관계자는 "무료초대권은 애초에 상영관 뿐만 아니라 영화매출을 높여 제작사와 배급사 등 영화계 전체의 이익을 높이자는 취지로 기획한 것"이라며 "앞으로 영화계 상생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