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하이트맥주 '국산보리' 외면…농가 '고사위기'

'가격 비싸다' 국산 맥주보리 외면...맥아 수입량 해마다 증가
농림부 "규제권한 없다" 뒷짐…보리농사 포기하는 농가 속출

</figure>국내 맥주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오비맥주와 하이트맥주의 원료 95%가 수입산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연간 3000억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내는 오비맥주 역시 비싸다는 이유로 국산 맥주보리를 외면하고 있어, 원료에서 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

불과 3~4년전만 하더라도 맥주 원료에서 국산 보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했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수입맥아(싹이난 맥주보리) 가격이 낮아지면서 국산맥아 사용비중은 점차 낮아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해는 국산맥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5%까지 뚝 떨어졌다. 반면 맥아 수입량은 최근 5년간 연 10%씩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농식품산업의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4조원에 달하는 맥주시장은 원료의 국산화를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비·하이트, 국내산 비싸다는 이유로 외면

2012년 국산 맥주보리는 40kg당 3만1000원에 거래됐다. 2007년 40kg당 3만8000원에 거래되던 것보다 25%가량 가격이 하락했다. 국산 맥주보리를 전량 수매하던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가격이 비싸다고 앓는 소리를 한 결과 가격이 매년 조금씩 하락한 탓이다. 맥주보리는 판로가 '맥주회사'로 한정돼 있는 까닭에 해당 농가들은 맥주회사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농가들이 국산 맥주보리 가격을 꾸준히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맥주회사들은 FTA 체결이후 국산 맥주보리를 외면한 채 가격이 더 싼 수입맥아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1년 한EU FTA가 발효되고 2012년 한미 FTA가 발효되기전까지만 하더라도 40%에 달했던 국산 맥주보리의 원료비중이 지금은 5% 수준으로 떨어졌다.

제값에 맥주보리를 팔지 못하자, 보리 농사를 아예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2007년 생산량이 8만7000톤이던 국산 맥주보리는 2012년에 2만5000톤으로 75%나 급감했다. 재배면적도 5년전 2만2000헥타르이던 것이 2012년에는 7000헥타르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수입 맥아량은 해마다 늘고 있다. 2007년 13만4622만톤이던 수입량이 2008년 14만9150톤, 2009년 16만5215톤, 2010년 15만5983톤, 2011년 19만7010톤으로 늘었다. 그러다보니 수입액도 2007년 727억원이던 것이 2011년에는 1273억원으로 2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맥주회사는 국내 보리맥주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해 수입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품질도 떨어지고 가격도 비싼데다가 생산량도 점점 줄어들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 맥주보리로 전체 원료의 5%를 채우는 것도 정부 중재 아래 계약재배한 것을 전량 구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맥주보리는 비슷한 품질의 수입맥아에 비해 3배 정도 비싼 편이다.

◇"매출 1조 넘는 맥주회사가 품종개선 연구는 외면"

하지만 주류전문가들은 막대한 이익을 내는 맥주회사가 원료 국산화를 위한 품종개선과 연구를 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석태 농촌진흥청 발효식품과 연구관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맥아 연구개발이 많이 이뤄졌는데 지금은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과거처럼 국내 원료를 몇 %는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사라지자 대기업들이 국내 맥주보리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주류전문가는 "매출이 10억도 안되는 막걸리업체에서도 우리쌀을 원료로 하기 위해 연구하는데 매출이 1조원이 넘는 대기업에서 원료의 국산화를 연구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사회적 지적이 잇따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맥주 원료의 국산화로 수입 맥아를 대체하면 보리 농가의 수익도 늘고 소비자들은 안전하고 건강한 맥주를 마시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규제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국내 맥주보리의 가격을 높여 보리 생산 농가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중재에 나설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맥주보리 가격을 2007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정부가 맥주회사와 보리 농가 중재에 나서겠다"면서도 "과거처럼 국내 원료를 의무적으로 몇 %씩 사용해야 한다는 식의 규제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l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