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는 리모컨에나 쓰려고요"…중고차 시장 쏟아지는 전기차

전기차 계약 취소 이어져…중고차 매물도 늘어나며 가격 급락
현대차·기아 배터리 공개로 우려 불식 나서…현장에선 "신뢰 회복에 시간 걸려"

8일 오전 인천 서구의 한 정비소에서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소된 전기차가 2차 합동감식을 받기 위해 지게차에 실려 정비소 내부로 향하고 있다. 이날 합동감식이 진행된 정비소에는 벤츠 측 관계자들도 찾아와 감식을 참관했다. 2024.8.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전기차 취소 문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전에 대한 불신이 상당합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한 딜러는 최근 전기차에 대한 시장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연이어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인해 안전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전기차 계약 취소가 줄을 잇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전기차는 소비자 외면 속에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

완성차 업계는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며 소비자 신뢰 회복에 나섰지만, 안전 문제와 직결된 만큼 신뢰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기차 구매를 취소하는 내용의 문의가 업계에 이어지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한 딜러는 "취소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생산 일정을 안내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취소하겠다'는 답변뿐"이라고 말했다.

이 딜러는 최근 연이어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안전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팽배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EQE 모델에서 불이 나 차량 72대가 전소하는 등 140여 대의 차량 피해와 8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지난 6일에는 충남 금산에 주차돼 있던 기아 전기차 EV6에서 불이 났다. 이 화재는 1시간 37분 만에 진화됐으며 다행히 인명피해 등 추가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연거푸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안전에 대한 우려는 커지는 분위기다.

전기차 구매를 고민했던 한 소비자는 "전기차 안전 문제가 며칠째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가족들도 모두 만류해 구매를 보류했다"고 말했다.

기존 차주들도 전기차 외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K Car)에 따르면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고가 발생한 지난 1일 이후 7일간 중고 전기차 접수량은 직전 주(7월 25∼31일) 대비 184% 증가했다. 매물이 늘어나면서 전기차 가격은 급격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의무운행기간만 끝나면 곧바로 전기차를 팔고 하이브리드차 같은 내연기관차로 돌아가겠다는 이들도 있다.

업계는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며 소비자 불신 줄이기에 나섰다. 현대자동차(005380)가 자사 전기차에 장착되는 배터리 제품을 모두 공개했으며, 기아(000270)도 이날 배터리 정보를 공개했다. 정부도 배터리 실명제 등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상대적으로 품질이 기술력이 높은 국내 기업 배터리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 중국 1위 업체인 CATL 배터리를 장착하고 있는데, 이를 공개해 소비자의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배터리는 전기차 화재의 주요 원인이면서도 그동안 국내에선 배터리 제조사나 제품명 등 상세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벤츠 EQE의 경우 화재 초기 CATL 제품이 탑재됐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2021년 화재 발생 가능성으로 중국에서 리콜된 적이 있는 세계 10위권의 중국산 파라시스의 제품이 탑재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기도 했다.

다만 배터리 정보 공개가 소비자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다. 한 딜러는 "국산 전기차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소비자에게 안내하고 있지만, 전기차 계약 취소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기아의 EV6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도 배터리 공개 효과에 대한 의문을 남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극복에 나섰던 완성차 업계에는 이번 화재가 치명적"이라며 "전기차 안전 우려 불식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pkb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