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도 두들겨 보고"…K-분리막 북미 공장설립 속도조절

"불확실성 큰 해" SKIET '상반기→연내' 선회…"先수주 우선' 전략
전기차 둔화, 트럼프 리스크에 시장 주시…LG화학·WCP도 '신중'

분리막을 살펴보는 SKIET 직원.(SKIET 제공)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대응을 위해 북미 생산기지 설립을 추진하던 국내 분리막 업계가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다.

해외우려기관(FEOC) 규정에 따라 중국 분리막 기업의 북미 시장 진출이 막히면서 국내 기업의 수혜가 예상되지만 전기차 수요 둔화와 미국 대선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오택승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361610)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023년 연간 및 4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북미 진출 시점과 관련해 "세부적인 준비는 완료돼 있는 상태"라면서도 "금년 중 의사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SKIET는 지난해 연말 북미 투자를 결정하려고 했다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부규정 발표가 늦어지면서 올해 상반기 중 의사결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실적 발표를 통해 다시 한번 의사결정 시기를 연기한 셈이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완성차 기업들의 전동화 계획이 수정된 데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IRA 보조금 정책이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SKIET도 전기차 시장 침체로 인한 고객사 재고 확대로 상반기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북미향 물량을 담당할 폴란드 2공장 가동 계획도 올해 3분기 이후에나 수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 CFO는 "사업 시작 이래 불확실성이 가장 심한 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 대선에 따른 불확실성도 북미 진출 시기를 늦춘 요인 중 하나다.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의 IRA 폐기를 주장하고 있어서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폴란드 공장 전경(SKIET 재공) ⓒ News1

분리막은 IRA 소비자세액공제(30D) 제도상 배터리 부품으로 분류된다. 전기차 소비자가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배터리 부품이 일정 비율 이상 북미에서 생산돼야 한다. 올해 60%인 이 비율은 매년 상승해 2029년에는 100% 북미 생산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FEOC 규정에 따라 중국산 분리막을 사용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없어 국내 분리막 기업들의 IRA 최대 수혜 대상으로 손꼽혀 왔는데 IRA 보조금 정책이 바뀌면 북미 투자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SKIET는 충분한 수주 물량을 확보한 뒤 현지 생산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 오 CFO는 "실질적인 북미 진출 전제 조건은 고객사의 선수주 확보를 통한 현지 이익 규모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현재) 고객들의 미국향 선수주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LG 트윈 타워. 2024.1.2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일본 도레이와 손잡고 분리막 시장에 진출한 LG화학(051910)도 전기차 업황과 미국 대선 결과 등을 지켜본 뒤 북미 공장 설립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지난해 미국 테네시주에 양극재 공장을 착공한 LG화학은 현지에 분리막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해 왔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분리막은 일본 도레이와 함께 북미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분리막 기업인 더블유씨피(WCP) 또한 북미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이지만 의사결정 시기는 미 대선 이후일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분리막 기업들이 북미 생산공장 설립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지만 여러 불확실성으로 인해 당장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 쉬운 상황이 아니다"고 전했다.

hanant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