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보험상품이 사라졌다"…금감원이 박탈한 소비자의 권리[기자의 눈]

절판마케팅, 불건전 영업행위 vs 좋은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권 소상공인 금융지원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12.23/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저도 그 상품 가입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어요. 좋은 상품이라 생각했는데 아쉽네요"

한 대형 보험사 직원의 말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1월 22일 각 보험사에 전달사항을 통해 비례형 치료비 보험의 신규판매를 즉각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또 의료비 지출을 보험금 지급대상으로 하는 상품에 대한 절판 마케팅에 대해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안내했다.

보험업계는 금감원의 즉각 상품판매 중지 조치에 당황스러워했다. 금감원이 전달사항을 안내하면서 즉시 보험상품 판매 중지를 요청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감원은 보험사에 상품 판매 중지를 요청할 때 주말 또는 월말 등 일정기간의 시간차를 두고 상품 중지 조치를 해 왔다.

금감원이 즉시 상품판매 중지를 요청한 비례형 치료비 보험은 연간 지출한 본인 부담 급여 의료비 총액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으로, 질병이나 사고의 종류, 치료 방식 등에 상관없이 기간 내 발생한 의료비를 모두 더해 연 1회 보험금을 책정하는 상품이다.

금감원은 비례형 치료비 보험의 본인 부담액이 많을수록 보험금을 많이 탈 수 있는 구조가 과잉 의료행위와 보험사기까지 조장할 수 있다고 보고, 상품판매 중단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영업현장의 절판 마케팅을 막기 위해 상품 중지 시기를 '즉시'로 못 박았다.

업계는 비례형 치료비 보험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상품의 즉시 판매 중지에 대해서는 우려했다. 비례형 치료비 보험의 판매 중지를 계기로 금감원이 보험상품 제재에 나설 때마다 '즉시' 상품 판매 중지를 요청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이같은 보험업계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금감원은 지난달 24일 경영인정기보험 상품구조에 대한 감독행정이 하루 전인 23일부터 시행됐다고 밝혔다. 또다시 예고 없이 상품판매가 중지된 것이다.

금감원의 감독행정으로 경영인정기보험은 계약자가 법인으로 제한되고, 보험기간은 경영인의 근무 가능 기간을 고려해 90세 정도로 제한됐다. 또 환급률은 100% 이내로 설계되며, 상품을 판매한 보험설계사에게 제공되는 유지보너스 지급도 금지됐다. 그날부터 보험사는 개정된 상품이 출시되기 전까지 경영인정기보험 판매가 금지됐다.

이번에도 역시 금감원은 "절판마케팅 등 불건전 영업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통제를 강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절판마케팅은 더 이상 상품이 판매되지 않거나 보험료 인상·보장 축소 등 상품 변경을 앞두고 있을 때 기존 상품의 경쟁력을 내세워 판매를 권유하는 영업 행위로, 장단점이 명확하다.

무분별한 절판마케팅은 대부분 장기상품인 보험을 충동적 계약에 의한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일부 소비자에게는 좋은 상품이 사라지기 전 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절판마케팅에 대한 금감원과 보험사의 입장도 분명하게 갈린다. 금감원은 절판마케팅을 '불건전 영업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보험사 설계사들은 절판마케팅을 '좋은 상품을 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설명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절판마케팅은 누군가에게 '불건전 영업'지만, 누군가에겐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금감원과 보험사 등을 통해 충분히 불완전판매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이뤄졌다면 이후 보험상품에 대한 선택권은 온전히 소비자에게 있어야 한다. 금감원이 소비자보호를 명목으로 소비자의 상품 선택의 기회 자체를 박탈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jcp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