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뻥튀기' 막겠다더니 예외 인정?…원칙 저버린 금융당국 '자승자박'
보험 '이익 부풀리기' 논란 일자 당국 무·저해지 상품 해지율 개선 추진
'로그-선형 모형'으로 원칙 마련하면서 예외 허용…'반쪽짜리 대책' 논란
-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금융당국이 보험개혁회의 논의를 거쳐 장고 끝에 내놓은 신 회계제도(IFRS17) 계리적 가정 개선안을 놓고 '반쪽짜리 대책'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보험사들이 낙관적이고 자의적인 계리적 가정을 사용해 과도한 이익을 부풀려 왔다며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현재의 비정상적이고 부적절한 가정을 바로잡지 못하면 향후 5~10년 내 보험업 전반의 위기로 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그러나 일부 보험사들의 반발에 부딪힌 금융당국이 '예외'를 허용키로 선회하면서 당초 개선안의 취지가 퇴색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7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주요 계리가정 가이드라인 중 핵심은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이다.
보험사들이 2016년부터 팔기 시작한 무·저해지 보험은 납입 기간 내에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대신 보험료가 싼 상품이다. 출시된 지 10년이 안된 보험상품이라 해지율 예측에 실질적인 경험통계가 없는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보험업계는 해지율 통계가 부재한 구간의 예상해지율을 높게 적용하는 낙관적인 방식으로 무·저해지 보험의 수익을 과다 인식하는 한편, 상품 가격을 적자 수준으로 낮춰 출혈 경쟁을 벌여왔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위는 수개월간 보험연구원, 보험개발원 등 유관기관은 물론 보험사들과 머리를 맞댔다. 해외 경험통계 등을 참조해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 관련 수렴 모형으로 시간이 갈수록 해지율이 낮아져 완납시점에는 0%에 근접하는 ‘로그-선형’(Log-Linear)으로 가닥을 잡았다. 보험료 납입완료시점의 해지율은 0%에 수렴하도록 했다. 해지 시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하는 무·저해지 보험 특성상 보험료 납입완료 이후 소비자가 해지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동안 무·저해지 출혈경쟁을 주도한 일부 보험사들의 이익 급감과 지급여력비율(K-ICS) 하락 등을 이유로 당국안에 조직적으로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이들 보험사들은 로그-선형 모형에 비해 해지율 하락폭이 더 완만한 선형-로그(Linear-Log) 모델을 채택해야 보험사가 받을 충격을 덜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아울러 금융당국이 특정 모형을 강제하는 것은 보험사 자율성을 보장하는 IFRS17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보험사 집단 반발과 함께 IFRS17 체제에서 단일안을 제시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금융당국은 결국 기존 입장에서 선회하며, 보험사들이 특정조건 충족 시 ‘선형-로그’, ‘로그-로그’ 등 다른 모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사업보고서나 경영공시에 원칙모형과의 차이를 상세히 공시하고, 금융감독원에 두 모형 적용 시 차이를 분기별로 정기보고하도록 했다. 계리법인 감리근거도 신설하기로 했다. 원칙은 ‘로그-선형’ 모형을 내세우되, 예외로 ‘선형-로그’ 또는 ‘로그-로그’를 허용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원칙 모형 대신 예외 모형을 쓰기 위해서는 공시와 금감원 보고 등 요건을 까다롭게 해 '허들'을 뒀다.
문제는 해지율 모형은 보험상품 가격과 수익성에 직결된다는 점이다. 보험은 상품 구성이 대동소이해 가격 경쟁력이 결정적이다. 특정 보험사가 원칙모형 대신 예외모형인 ‘선형-로그 방식’을 택할 경우 지금처럼 무·저해지 상품의 가격을 낮추면서도 높은 수익성을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부 회사가 예외모형인 ‘선형-로그 방식’을 선택하면 나머지 보험사들도 경쟁 차원에서 ‘선형-로그 모형’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의미다. 사실상 원칙모형인 ‘로그-선형’을 단일안으로 제시한 것에 대한 부담으로 마련한 예외가 단일안이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게 된 셈이다.
실제 ‘예외 모형’이라는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자 일부 보험사들은 이미 계리법인 등을 접촉해 예외모형인 ‘선형-로그’ 모델을 통한 검증을 의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회계 전문가는 “여러 모형을 제시한 당국의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단기성과에 치우친 최고경영자(CEO) 등 보험사 경영진이 ‘선형-로그’ 모델을 택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다”며 “2개의 선택지를 제시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하나의 단일안을 내놓은 꼴이다”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보험개혁회의에서 다룰 개선과제들의 원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번 해지율 개선 원칙이 무력화되지 않도록 보험사들의 예외적용이 남용되는 것을 막을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cp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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