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보장 사각지대에 있는 ‘나의 해리에게’[영화in 보험산책]

“건강 앱·웨어러블 기기 활용…정신·신체 종합 보험상품 개발 필요”

지니 TV 오리지널 '나의 해리에게' 포스터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는 해리성 정체 장애로 오전 4시와 오후 4시 잠에서 깨면 인격이 바뀌는 은호와 혜리의 이야기다.

까칠한 성격의 아나운서 주은호는 청취율 1위의 새벽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은호는 마음속 깊은 상처로 새로운 인격이 발현하며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겪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이 상황을 모르고 있다.

혜리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게 된 은호의 또 다른 인격이다. 혜리는 은호와 달리 주위 사람들을 잘 도와주는 정이 많은 인격이다. 혜리는 과거의 기억이 없지만, 스스로를 25살이며 형제자매가 없는 외동이라고 소개한다. 혜리는 은호의 경험이 꿈이라고 생각한 이후, 자신이 다중인격임을 알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해리성 정체 장애는 해리 장애의 한 종류로, 두 개 이상의 자아를 가지는 정신 질환이다. 의식, 기억, 정체성, 환경에 대한 지각 등과 같이 정상적으로 통합돼야 할 성격 요소들이 붕괴하면서 나타난다. 통상 아동기에 겪는 성적·신체적 학대에 의해 발생하고, 트라우마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 기제로 자아가 분리되면서 해리성 정체 장애가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성 정체 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자아는 △경험 △나이 △성격 △성별 △이름 등 모든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또 일반적으로 자아가 바뀔 때 기억을 잃거나 불안감을 느끼거나, 서로 다른 자아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해리성 정체 장애 환자는 매우 드물다. 현재 전 세계 인구 중 1.5%만이 진단받은 것으로 보고된다.

해리성 정체 장애를 진단받으면 우울감이나 불안감에 한해서는 약물치료가 가능할 수 있지만, 제대로 대처하려면 심리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 해리성 정체 장애를 예방하거나 완치하는 방법은 아직 없고, 다만 증상을 완화하거나 일상생활을 지내는 법을 배우는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은호의 해리성 정체 장애 같은 정신질환은 보험사에서 보장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우울증 등 정신질환 보장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정신질환 진단의 주관성은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키고 보험금 청구 타당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여전하다.

우선 보험사의 비급여 항목과 상당수의 정신질환 코드가 보장 범위에서 제외되고 있다. 정신질환 보장 확대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은 정신질환의 고유한 특성과 이를 둘러싼 사회·환경적 요인, 그리고 보험산업 내 구조적 요인 때문에 보장이 쉽지 않다. 이로 인해 보험사는 상품 설계가 어렵고, 보험금 청구 타당성 입증도 어려운 상황이다.

보험연구원은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공·사가 긴밀하게 협력하고, 보험사는 다양한 상품 및 정신질환 예방·관리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보험상품 제공 시 정신건강 관리 프로그램이나 건강 활동 추적 앱, 웨어러블 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신·신체질환을 모두 보장하는 종합적인 보험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시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의 은호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해리성 정체 장애는 초기에 증상을 발견하면 원인을 더 빨리 찾고, 바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중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보험업계가 보험연구원의 제안처럼 건강 활동 추적 앱이나 웨어러블 기기 등을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은호는 자신의 해리성 정체 장애를 훨씬 더 빨리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jcp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