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수페타시스…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집중투표제'

집중투표제, 상법 도입에도 25년 이상 유명무실
"도입되면 좋은 선례" vs "경영권 간섭 우려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2024.11.13/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코스피 시가총액 20위권 대기업인 고려아연(010130)이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또 최근 경영진의 일방적 의사결정 논란이 인 이수페타시스(007660) 역시 소액주주들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간 상법 조항 때문에 유명무실했던 집중투표제가 상법 개정 흐름과 맞물려 소액주주 보호장치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다시금 금융투자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경영권 분쟁 계기…'집중투표제 도입' 추진하는 고려아연에 쏠리는 이목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고려아연은 오는 23일 예정된 임시주총 안건으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1주당 이사의 수만큼의 의결권을 각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일례로 10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주식 1주당 10개의 의결권이 부여된다. 주주는 이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 1명에게 몰아줄 수도 있다.

이같은 특성상 집중투표제는 최대주주에게 불리하다는 평가를 받아 통상 경영진이 아닌 소액주주들이 도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최 회장이 아닌 MBK·영풍 측이 최대주주에 올라서며 현 경영진 측이 집중투표제를 추진하는 기묘한 상황이 됐다.

MBK·영풍 측은 이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약 46.7%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윤범 회장 측 지분은 우호세력을 합해도 39.15%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최대지분을 확보한 MBK·영풍의 이사회 과반수 확보가 어려워져 최 회장 측이 경영권 분쟁에서 유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최 회장 측은 이번 집중투표제 도입 추진 이유로 "이사회의 독립성과 다양성을 강화하는 거버넌스 개선을 어렵게 하는 일반 투표제의 단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MBK·영풍 측은 "(최 회장 측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안한 이유는 최 회장 자리보전용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라고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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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증 강행' 이수페타시스 소액주주연대도 "임시주총서 집중투표제 안건 제안"

집중투표제가 주총 핵심이슈로 떠오른 기업은 고려아연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5500억 원의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한 이수페타시스는 금융감독원의 두 차례에 걸친 신고서 반려에도 최근 소액주주연대와 만나 유증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수페타시스는 5500억 원 중 약 3000억 원을 이차전지 탄소나노튜브(CNT) 소재 전문 제조기업 제이오 인수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본업과 관련없는 투자를 위해 유증을 강행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수페타시스 소액주주연대는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경영진의 독단적인 판단만을 고집하는 태도에 보이고 있다"고 반발하며 유증 철회를 위한 임시 주총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소액주주 측은 이번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안건으로 제안하고, 오는 3월 정기주총에서 주주를 위한 이사를 선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경영진은 집중투표제를 임시주총이 아닌 정기주총 안건으로 올린다는 입장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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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유명무실 집중투표제, 어떤 식으로든 도입되면 좋은 선례"

투자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25년 이상 유명무실했던 집중투표제의 도입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주주행동플랫폼 '액트'는 최근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이 집중투표제 도입 추진 소식에 대해 "경영권 분쟁이라는 기회를 잘 활용해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수 있다면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다른 소액주주단체인 헤이홀더도 "이번에 고려아연이 꺼낸 (집중투표제) 카드는 법리적 가능성은물론이고 명분과 실리까지 모두 잡을 수 있는 카드"라며 "물론 그 목적은 경영권 보호지만, 내용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옹호했다.

앞서 집중투표제는 지난 1998년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위한 장치로 상법에 도입됐다. 그러나 회사가 정관을 통해 이를 배제할 수 있도록 허용돼 실제로 도입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한 상장사가 전체의 96%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피 상장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않았더라도, 실제로 주주보호를 위한 장치로 사용되는 경우도 손에 꼽을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추천한 이사 후보가 집중투표제를 통해 최초로 JB금융지주(175330)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KT&G(033780)의 주총에서도 기업은행이 추천한 손동환 후보(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행동주의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 국민연금의 지지를 받고 임기 3년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두 회사 모두 지배구조에 대해 문제가 제기돼 온 회사인만큼, 투명성 측면에서 대주주 중심의 이사회를 뚫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Ⅱ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2024.12.19/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상장사 "집중투표제, 경영권 간섭 우려도"…정치권에서는 상법개정안 추진 중

다만 일각에서는 집중투표제가 활성화될 경우, 투기자본의 '먹튀'에 이용될 거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과거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했던 사례처럼, 집중투표제는 외국자본의 경영권 간섭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소수주주 권리 강화를 위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상법개정안은 △이사 충실의무 주주로 확대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 집중투표제 의무화 △사외이사 명칭 독립이사로 변경 및 이사 중 비중 3분의 1로 확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안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상법개정안은 아직 법사위에 회부된 상황으로 향후 조항이 수정되거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도 남아있으나, 의석수 등을 고려하면 개정안이 통과돼 시행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계에서는 기존 이사회에 대한 공격을 우려하고 있는 만큼 상법 개정 시에는 해당 리스크를 축소하려는 유인이 발생해, 지분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상법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되는데, 시행 전까지 단기적으로는 대주주의 지분 확보나 자기주식 매입 등 미리 지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Kri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