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에 총선·계엄까지…'테마'로 얼룩진 증시[2024 핫종목 결산]④
금감원, 이례적으로 정치 테마주 특별단속 2차례 진행
코스피 시총 상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353% 급등
- 김정현 기자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올해 국내 증시에서는 유독 테마주 장세가 두드러졌다. 연초에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이라는 정치적 이벤트가, 연말에는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국 불안이 이어진 탓이다.
정치 테마주뿐만이 아니다. 재계에서도 사상 초유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로 기업가치와 무관하게 테마성으로 주가가 급등락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3일 정치 테마주 특별단속반을 가동하고 집중 감시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정치 테마주는 정치인과의 학연, 지연, 혈연 등 온갖 이유를 갖다붙여 만들어지지만, 실제로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종목이 많다. 옷깃만 스쳐도 테마주로 엮이는 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테마주인 동신건설은 이 대표의 고향인 경북 안동시에 소재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재명 테마주'로 분류된다.
올해 초 2만 원대에 머무르던 동신건설(025950)은 지난달 20일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연중 최저가인 1만 4010원까지 급락했다.
그러나 지난 3일 계엄 선포·해제 및 탄핵 정국에 지난 10일에는 7만 3300원까지 치솟았다. 겨우 20여 일 사이에 주가가 423% 급등한 셈이다. 현재는 4만 5000원까지 주가가 40% 가까이 떨어지며 단기간 급등락을 반복 중이다.
이번 계엄 해제·탄핵 정국에 주목받은 우원식 국회의장도 테마주가 등장했다.
코오롱모빌리티그룹우(45014K)는 안병덕 코오롱 대표와 우 의장이 모두 1957년생에 경동고, 연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우원식 테마주에 등극했다. 지난 9일 2850원에 불과했던 코오롱모빌리티그룹우는 상한가를 거듭하며 지난 23일 1만 1230원까지 294% 급등하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앞서 금감원은 제22대 총선을 앞둔 지난 2월에도 정치 테마주 특별단속을 실시한 바 있다. 금감원이 1년에 두 차례나 테마주 특별단속에 나서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그 정도로 올해 정국이 불안하다는 방증이다.
제22대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테마주 등이 급등락을 거듭한 바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총선을 앞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월 23일 사이에 주요 정치 테마주로 구성된 '정치 테마주 지수'의 일별 주가 등락률은 -9.81~10.61%를 기록했다.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로 인한 정국 불안이 나타난 지난 2일부터 16일 사이 등락률도 -5.79~12.98%로 같은 기간 코스피(-2.78~2.43%), 코스닥(-5.19~5.52%) 대비 변동성이 극도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제22대 총선 관련 정치테마주 특별단속에서는 텔레그램 등 SNS를 이용한 허위사실의 생산·유포 및 선행매매 등 정치테마주 관련 불공정거래에 대해 검찰 고발 등 엄중 조치를 실시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테마주는 주가 예측이 어렵고, 미미한 정치 상황의 변화에도 주가가 급락할 수 있으므로 이미 주가가 급등한 종목에 대한 추종 매수는 큰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며 "출처가 불분명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현혹되지 말고 테마의 실체를 명확히 확인하고 투자를 결정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올해는 사상 초유의 '머니 게임'이 발생한 고려아연(010130) 경영권 분쟁 테마도 국내 증시를 뒤흔들었다. 코스피 시총 20위 이내의 기업이 겨우 3개월 사이에 주가가 353% 올랐다.
올해 내내 40만~50만 원대에 머물던 고려아연 주가는 지난 75년간 동업 관계였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영풍(000670) 장씨 일가간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되며 주가가 급등락을 거듭했다.
특히 사모펀드운용사(PEF) MBK파트너스와 손잡은 영풍과 최 회장 측 양쪽이 대항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공개매수가를 연달아 상향하는 '치킨 게임'에 돌입하자 주가가 연일 상승했다.
공개매수 종료 이후에도 고려아연 주가는 지난 12월 6일 최대 240만 7000원까지 올랐다. 한쪽의 명확한 우위가 나타나지 않아 장내매수 기대감이 유입된 탓이다.
다만 이 사이에 고려아연 이사회가 이날 '주당 67만원'에 373만 2650주를 유상증자해 총 2조 5000억 원을 조달하는 증자 안건을 의결하자 단숨에 주가가 하한가로 곤두박질치는 등 주가 널뛰기도 나타났다.
고려아연이 공개매수가(83만 원) 보다도 훨씬 낮은 신주 발행가액을 제시해 주가가 과열됐음을 인정한 탓이다. 조달 자금을 공개매수에 지출한 차입금 상환에 상환하겠다고 밝힌 것도 문제가 됐다.
투자자들은 '최씨 일가를 위한 공개매수에 쓴 빚을 일반 주주들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을 제기했고, 금감원도 주관사 현장검사에 나서자 고려아연 측은 주주들에 사과하고, 유증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고려아연 주가는 지난 12월 6일 역대 최고가인 240만 7000원까지 오른 뒤, 장내매수 기대감 감소에 다시 110만 원대까지 54%가량 감소했다.
현재 MBK·영풍 측은 장내매수 등을 거쳐 총 40.97%의 지분을 확보한 상황이다. 경영권 방어를 추진 중인 최 회장 측은 특별관계자를 포함해 17.5%의 지분을 확보했다. 우호세력 지분을 포함하면 35% 내외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연합은 오는 2025년 1월 23일 예정된 임시주총에서 소액 주주 및 중립 주주 포섭 경쟁을 두고 경쟁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에 대해서는 향후 주총에서 연기금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 또 양측의 사법 리스크가 어떻게 되느냐 등 주가 전망을 가늠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은 상황"이라며 "투자자들은 기업의 본질적 가치가 아닌 테마성으로 투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ris@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