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갈 구멍 여전해"…정부 '자본시장법 개정' 우회카드에 비판 여전
"자사주 셀프 기부·가족회사 설립 등 新꼼수 '터널링' 못 막아"
"이사 충실의무 일반조항 필요…상속세·배당소득세 당근 제시"
- 박승희 기자, 신건웅 기자
(서울=뉴스1) 박승희 신건웅 기자 = 정부가 상장법인의 분할·합병 시 일반주주 이익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자본시장법을 개정한다. 시장 안팎에서는 아쉽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간 문제 됐던 사례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진일보한 점은 유의미하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았단 것이다.
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상장법인 합병·분할시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이번 주 국회에 제출한다.
비계열사 간 합병뿐만 아니라 계열사 간 합병 등에 대해서도 가액 산정이 자율화되고, 외부 평가기관에 의한 평가·공시도 의무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대주주를 제외한 모회사 일반 주주에게 상장되는 자회사 기업공개(IPO) 주식 중 20% 이내를 우선 배정할 수 있는 근거도 만든다.
이번 정부안은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인 상법 개정안의 대안으로 '핀셋규제'를 바탕으로 했다.
시장에서는 그간 문제가 됐던 합병·분할 사례에 대한 대응이 일부 개선된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한 '땜질식'이라는 비판이 여전하다.
지배구조 분야 전문가인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아쉽다"며 "합병, 분할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거는 맞지만 고려아연, 두산 등등 이런 사례에 번번이 개입하고 법이 뒤따라갈 수도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서는 포괄적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안별 규제는 나날이 업데이트되는 '터널링'(지배주주가 사익을 위해 회사 이익을 빼돌리는 행위) 시도를 막을 수 없단 것이다.
일례로 HL홀딩스 사례가 거론된다. 이 회사는 최근 비영리재단 법인을 세워 160억 원 상당의 자사주를 무상 출연하겠다고 공시했다. 이사회 전원이 동의한 사안으로, 주주 친화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회삿돈으로 지배주주 지배력 강화 꼼수를 부린다는 주주 및 시민단체 비판,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결국 계획을 철회했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가 공익법인인 재단으로 넘어가면 의결권이 되살아나 대주주의 백기사가 된다.
가치투자 명가로 불리는 VIP자산운용의 김민국 대표는 "정부안에 담긴 주주 보호 노력은 합병이라는 눈에 바로 보이는 방안은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외 지점에서 대주주들이 마음먹고 꼼수를 찾아내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HL홀딩스의 자사주 처분 사례나, 가족 회사 설립으로 승계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손실 발생으로 주주가 피해를 떠안는 경우처럼 일반 투자자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일이 많다"며 "이사들이 스스로 규제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전문가인 이남우 거버넌스포럼 회장도 "정부가 거버넌스 문제점 및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모든 문제는 지배주주의 월권 및 사익편취, 이를 조장하는 회사 측근들 및 무력한 이사회 때문"이라며 "이사가 자기를 뽑아준 주주를 위해 일하지 않으니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주주에 대한 보호 의무를 포괄적으로 담는 일반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입장이다.
김우진 교수는 "민주당안 2호에 들어간 주주에 대한 보호 의무라도 추가하고 반영해서 일반 조항을 만들었으면 한다"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면 안 된다"고 했다.
김민국 대표도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고 싶다"며 "당국이 보기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면 상법 내에 상장회사 특례 조항을 넣으면 되고, 얼마든지 방법이 있다. 중요한 건 실제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꼬집었다.
가치투자 1세대인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상법 개정만 해서 채찍을 휘두르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상속세와 배당소득세를 함께 개정해 당근을 같이 주면 될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seungh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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